[세 거인에게 길을 묻다] 제3부 김수환 추기경 8)화해와 상생의 리더십<끝>

입력 2014-06-23 07:30:21

남북 분단 '마음의 벽' 무너뜨린 한마디 "화해 하십시요"

1997년 6월 22일 통일동산에서 열린 북한동포돕기 걷기대회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
1997년 6월 22일 통일동산에서 열린 북한동포돕기 걷기대회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이 1997년 6월 조선족 사기피해자 농성장을 방문에 위로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생질 정영웅씨 제공)
김수환 추기경이 1997년 6월 조선족 사기피해자 농성장을 방문에 위로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생질 정영웅씨 제공)

6'25 전쟁으로 한국 천주교회는 반공주의를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1965년부터는 매년 6'25 다음 주를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해 북한 교회를 기억했다. '침묵의 교회'란 철의 장막에 갇힌 수난의 교회를 표현한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역시 공산주의의 위험을 경계했다. 그러나 추기경은 북한을 경계하는 데 머무는 대신 맹목적 반공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기를 희망했다. 공산주의를 막을 수 있는 길은 군사력의 강화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독재 시절 그가 민주사회를 위해 나섰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 "화해와 일치로 분단 극복을"

추기경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북한에 가서 직접 그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피력했다. 이는 북한과의 대화를 희망한 것으로 교회의 전통적 반공주의에 대한 재검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1972년 8월 15일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때 추기경은 '지속적인 남북대화로 평화통일의 디딤돌을 놓기 바라며, 남북 모두가 진정으로 인간을 존중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사회로 나가기를 희망한다'는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을 발표했다.

이 같은 입장은 서울 대교구의 관할 구역이 휴전선 넘어 황해도까지 뻗쳐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추기경이 평소 지닌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추기경은 집전 끝 강복을 줄 때 언제나 세 번 십자가를 그으면서 그 가운데 하나를 북한동포를 위해 행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추기경은 화해와 일치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남북한의 물리적 심리적 분단을 해소하고, 한국 민족 전체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틈날 때마다 강조했다.

▷ "돈의 노예가 되면 통일은 불가능"

김 추기경은 한국에 온 조선족이 중국으로 돌아가며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조선족 아주머니가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다시는 조국이라고 찾아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고용했다고 노예처럼 부려 먹으니 그 설움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비록 잘 살기는 하지만 돈만 아는 사람들로, 동족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다는 말이 중국과 북한에 퍼지면서 상종하기 싫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질주의, 황금만능주의로 병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비인간화시키고 불신과 이질감을 더욱 조장합니다. 이는 통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남한 사람들이 이웃의 가난과 고통을 도울 줄 알고, 친절하고 동족애가 깊다고 인식하면 북한 동포들은 우리와 합하고 싶다는 열망을 더욱 크게 가질 것입니다. 그 반대가 된다면 통일의 길은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나 혼자, 우리끼리만 잘 사는 사회는 결국 우리 모두 못사는 사회로 이끌 뿐입니다."

추기경이 1996년부터 북한에 옥수수 보내기 운동, 사랑의 국수 나누기 운동, 사랑의 옷 보내기 운동 등을 서울대교구 차원을 넘어 전 교회적 운동으로 확산시켰던 것은 우리의 인심과 사랑이 '적대감'을 극복하고 화해와 일치,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마음을 열고 상대를 보라"

김 추기경은 남북 분단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내에서 빈부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 여야갈등 등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고질병으로 꼽았다. 여야가 협력할 줄 모르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증오하고, 동서가 화합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남북한 통일을 기대할 수 없으며,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 없이 민족의 굴기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상대도 힘들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서로 화해할 수 있고, 일치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공감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습니다. 다툼과 분열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냉장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가 꿈꾸었던 사회는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사는 사회가 아니라 상대와 내가 함께 사는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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