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죽어서도 왜적 망하길 바란 독립운동가 김동삼

입력 2014-06-23 07:35:52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1878년 오늘 경북 안동의 내앞 즉 천전(川前)마을에서 태어난 '만주벌 호랑이' 독립운동가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이 1937년 옥중 순국 전 유언이다.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의 종손이자 안동 의병의 최고 지도자였던 서산 김흥락에게 배웠다. 일찍 세상의 변화 흐름을 읽고 독립운동에 나서 1907년 고향에 협동학교를 설립, 인재를 키워 유교질서의 안동 혁신에 앞장섰다. 1910년 조선 패망 후 만주로 망명, 독립군기지 건설과 독립군 양성으로 국내 진공을 노리고 같은 마을 족숙(族叔) 백하 김대락과 의논, 만주망명 계획을 세워 그해 12월부터 전답을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해 안동을 떠났다.

의성 김씨 문중과 김대락의 손아래 처남인 석주 이상룡의 고성 이씨 문중에서의 대규모 망명이었다. 만주에서 신흥학교를 세웠고 석주가 사장을 맡은 경학사에 참여,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힘을 쏟았다. 또 1914년 군사병영 역할을 한 백서(白西) 농장도 건립했고, 1919년 2월 길림에서 민족대표 39인으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항일조직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참모장도 맡았고, 흩어진 독립세력 통합에 노력했다. 1931년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1937년 순국했다. 유언에 따라 유골은 한강에 뿌려졌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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