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명 붉은 악마, 러시아 관중 잠재웠다

입력 2014-06-18 11:04:42

후반 23분 한국 선제골에 러 응원단 한동안 '얼음'

후반 23분 이근호의 골이 터지자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는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얼떨결에 골을 내준 러시아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예프의 얼굴은 그라운드를 가득 메운 '코레아' 함성에 더욱 일그러졌다.

러시아 골대에서 가까운 경기장 2층 상단에 자리 잡은 '붉은 악마'들은 '오 필승 코리아'를 목청껏 외쳤다. 러시아 응원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동안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후반 29분 러시아의 골잡이,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가 동점골을 터뜨리자 상황은 정반대로 변했다. 러시아 국기가 관중석 곳곳에서 펄럭였고, 브라질 관중도 박수를 보냈다. 붉은 티셔츠를 갖춰 입은 채 경기장을 찾은 600여 명의 한국응원단은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이날 오전 7시 주심의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 4만 1천여 석의 경기장은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러시아 측 응원단이 우리보다 훨씬 많아 '러시아'를 연호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자 지구 반대편에서 온 한국팀이 안타까웠는지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온 브라질 시민들은 한국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경기 중간 중간에는 파도타기 응원도 간간이 나왔다. 경기 종료 직전 러시아가 공을 돌릴 때는 '우~'하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다는 자원봉사자 파트리샤 씨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르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브라질이 우승해서 좋은 기억이 있다"며 "한국도 브라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러시아의 동점 골 이후 양 팀은 결승골을 노렸지만 무위로 끝났다. 체력이 문제로 보였다. 쿠이아바 날씨는 크게 덥지 않았지만 습도가 다소 높아 후텁지근했다. 구자철 등 한국 선수들은 후반 들어 잇따라 발에 쥐가 나면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FIFA자료에 따르면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총 108.12km를 뛰었고, 러시아는 113.81km를 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한국영(11.36km)'구자철(11.24km)'이청용(11.32km)이, 러시아에서는 알렉산더 코코린(11.52km), 빅토르 파줄린(11.62km), 알렉산더 사메도프(11.02km)가 상대적으로 많이 뛴 편이었다. 볼 점유율은 한국이 52%로 러시아 48%보다 높았다. 관중은 3만7천603명으로 집계됐다.

사상 첫 원정 8강에 도전하는 한국은 러시아와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2차전인 알제리와의 경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벼랑에 몰렸다. 알제리전에서 승리, 승점 3점을 따내지 못한다면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해 부담이 훨씬 커진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위의 벨기에는 자타공인 H조 최강으로 한국이 넘어서기에는 어려운 상대로 꼽힌다.

브라질 쿠이아바에서 이상헌 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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