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내수용 외국어 교육은 이제 그만

입력 2014-06-17 07:00:58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한 싸움에서는 천장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바닥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중에서)

인류가 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류가 시작되었습니다. 신인류가 사는 세상은 숫자가 20을 넘지 않으며, 10을 셀 수 있는 사람이 엘리트입니다. 시스템의 지배자는 지식을 통제함으로써 시스템을 유지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라는 책에 실린 '수의 신비'의 내용입니다.

이 책을 읽는데 엉뚱하게도 영어에 몰입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세계화한 시대이니 영어나 로마자로 무장한 세계인으로 살아가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21세기의 세계화에 대응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이전부터 영어 공부가 시작됩니다. 그로 인한 사교육비는 천문학적인 규모일 것입니다. 연간 수백만 명이 비싼 응시료를 지불하고 토익과 토플 시험을 봅니다. 서울대가 실시하는 텝스는 응시료 연간 수익이 1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비영어권 44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EF에듀케이션퍼스의 영어 능력 평가지수(EF English Proficiency Index)에서 우리나라는 13위를 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비용을 투자한 것치고는 초라한 결과가 아닌가요?

물론 여기서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과연 우리가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가 그 질문입니다. 영어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로 인해 바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세계화를 말하지만 영어가 세계화를 위한 유일한 도구는 아닙니다. 세계는 그것보다는 훨씬 다양하게 열린 곳입니다. 알고 보면 영어의 효용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수용입니다. 남들이 하니까, 또는 남들보다 우월하기 위해 선택한 어리석은 선택지일 뿐입니다.

유치원 다닐 정도의 아이가 영어를 구사합니다. 옆에는 잘 차려입은 엄마가 흡족하게 아이를 바라봅니다. 영어유치원, 국제중학교, 국제고등학교, 조기 유학을 운운하는 등 영어는 이미 경쟁교육의 최우선 순위가 된 지 오래입니다. 최근 교육부가 수능시험 영어 문제를 쉽게 출제해 영어 사교육비를 줄여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심각함을 인식했다는 것이 일단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영어 사교육비는 수능시험을 쉽게 출제한다고 줄어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어 사교육비는 초'중등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진학한 다음, 아니 취업한 다음에도 영어 학원에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넘쳐납니다. 그것도 알고 보면 사교육비입니다. 이 문제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영어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적 격차'의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그로 인한 '영어 지상주의' 풍토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더욱 본질적인 곳에도 위치합니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부끄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단지 외국에 나가 '물'을 잘못 먹은 지식인들이 활개치는 이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영어가 유창하지만 무식한' 사람으로 성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른의 욕망을 아이들에게 투영할 게 아니라 아이들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을 교육의 출발로 삼자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 몇 마디, 수학 몇 문제보다 삶에는 더 가치 있는 것이 많이 있음을,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을 아이들에게 부여해야 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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