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노는 것'의 효용성

입력 2014-06-12 14:05:07

지난 5월은 개인적으로 4월보다 잔인한 달이었다. 단 하루도 여행을 목적으로 대구를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주말마다 집안 행사가 몰렸고 아이템 생산과 취재로 지친 육신은 쉴 틈을 찾지 못했었다. 올해 초 1년 계획을 세우면서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대구 밖을 벗어나 여행을 가자'는 목표를 4월까지 잘 지키다가 5월에 결국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목표를 지키지 못한 후폭풍은 컸다. 5월 중순부터 '무기력'이라는 유령이 날 감싸서 옥죄기 시작했다. 일찍 잠이 들어도 다음 날은 늘 힘들었다. 내가 무기력하다고 내가 써야 할 기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6월 1일 부산에 놀러 갔다 온 뒤에야 그나마 생기가 회복됐다. 머리 회전이 5월의 지난날들보다 상대적으로 잘 돌아갔던 것은 물론이다. 처음으로 '놀고 쉬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를 알게 됐다.

잘 놀고 잘 쉬기로는 이 사람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애욕전선 이상없다' '탐구생활' 등의 웹툰으로 유명한 '메가쇼킹만화가'(본명 고필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만화 연재가 한창이던 2010년쯤 그는 일종의 '소진'을 겪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지 않고 한 일은 제주도에 '쫄깃센타'라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든 것과 올해 홍대 근처에 같은 이름의 문화공간을 만든 것이다. 특히 이곳은 여행자들의 숙소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로 잠시 중단됐지만 부침개 재료와 제주 생막걸리만 챙겨오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부침개 콘서트'에는 많은 서울의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온다. 또 게스트하우스 안에 꽂힌 많은 책들을 벗 삼아 하루종일 빈둥거릴 수도 있다. 그런 덕분인지 쫄깃센타는 지금 제주도에서 가장 인기 많은 게스트하우스가 됐다. 이 모든 것이 '신명나게 한 판 놀아보자'는 메가쇼킹만화가와 이른바 '쫄깃패밀리'로 불리는 스태프들의 합심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어떤 면에서는 메가쇼킹만화가가 매우 부럽다. 그는 자기 말로는 빈둥빈둥 논다지만 뭔가를 자꾸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으니 더디 가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놀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많은 걸 이뤄냈다. 나 또한 일을 즐기면서 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무기력과 소진이 찾아오니 '내가 일을 즐기면서 한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일을 즐기면서 한다 해도 지친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때는 쉬어줘야 한다. 그때 쉬는 걸 두려워한다면 인생이 지옥도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일 듯하다. 메가쇼킹만화가가 올린 트위터의 한 문구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다 함께 놀자. 놀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뭐 안되면 말고. 신명나게 놀았으니 그걸로 충분한 거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