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나라일수록 공직이 투명한가, 역으로 못사는 나라는 부패해있는가.
두 질문 다 정답은 '그렇다'다. 공직이 투명한 국가일수록 소득 수준이 높고 부패한 나라일수록 가난하다고 통계는 말하고 있다. 국민소득 수준과 부패 정도는 반비례 관계다. 국제 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와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국민소득 지표를 비교해 보면 특히 두드러진다.
국제적인 부패감시 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는 1995년부터 매년 한 차례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를 발표하고 있다. 세계은행 등 7개 독립기구가 실시하는 국가별 공직자의 부패 정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종합해 점수를 매긴다. 10점이면 완전 청렴 국가이고 0점이면 완전 부패 국가다. 점수를 많이 받을수록 청렴한 국가로 간주된다. 2013년엔 덴마크, 뉴질랜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싱가포르, 스위스, 네덜란드, 호주, 캐나다 등 순으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81점 이상을 얻었다.
2013년 세계은행이 내놓은 1인당 국민소득 상위 10개국은 룩셈부르크, 카타르, 노르웨이, 스위스, 호주, 덴마크, 스웨덴,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순이다. 얼핏 봐도 두 집단은 상당히 일치한다. 핀란드와 네덜란드, 뉴질랜드만이 CPI 10위권에 들면서 소득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 잘사는 나라의 반열에 오르려면 공직 부패부터 막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CPI 점수 55점을 얻었다. 46위의 성적표다. 슬로베니아나 몰타, 헝가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아시아 국가만을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공직 청렴도는 초라하다. 아시아 국가 중엔 싱가포르(5위)가 가장 청렴하고, 홍콩(15위), 일본(18위)이 뒤를 이었다. 이 역시 소득 수준과 궤를 같이 한다. 우리나라의 CPI는 지난 2010년 39위까지 오른 후 해마다 한두 계단씩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선진국 중 최악의 부패국가에 든다는 지표는 이뿐 아니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틴시가 발표한 2013 조사보고서는 한국의 부패점수(부패 10점~청렴 0점)로 6.98점을 매겼다. 명백한 부패국가란 지적이다. 아시아 선진국 중 최악이다. 싱가포르가 0.74점으로 가장 청렴했고 일본(2.35점), 홍콩(3.77점)순이었다. 더 한 것은 이 지표 또한 지난 10년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는 지금 부패와의 전쟁 중이다. 부패를 잡지 못하면 국가발전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중국은 시진 핑 주석 취임 후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OECD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만들어 공직 부패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김영란법은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부패국가라는 오명을 한숨에 걷어 낼 수 있는 법이었다. 원안대로라면 이 법은 공직자가 금품을 수수한 경우 직무관련성이나 대가를 불문하며 스폰서 및 떡값까지도 모두 처벌 대상에 포함시켰다. 명실상부 선진국 입법에 부응했다. 기존 뇌물죄로는 스폰서 검사 등이 대부분 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났었다.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에서 잠자던 이 법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제 모습을 찾는가 싶더니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새누리당 의원은 공직자 대상만 156만 명이고 가족까지 포함하면 1천570만 명이라며 적용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다며 발목을 붙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역시 공'사립학교 및 언론기관까지 범위를 물타기 하며 통과의 맥을 끊었다. 여'야 국회의원 모두 해야 할 이유보다는 안 해야 할 이유만 찾고 있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상반기 국회서 이 법안의 통과를 간청했지만 국회는 여전히 세월호 여파가 숙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야는 더 이상 안 할 이유를 찾지 말아야 한다. 대신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국민들은 원안대로의 김영란법을 원한다. 그뿐이다. 이런저런 핑계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그것이 하반기 국회의 첫 입법이 된다면 더없이 상징적이다.
공직 부패를 잡지 않고서는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기 어렵다. 국회는 이제 잠든 김영란법부터 다시 꺼내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