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살아"…부모 "너 때문에 못 살아"

입력 2014-06-11 10:30:55

아침에 눈 뜨자마자 '폰질', 밤에는 손에 쥐고 잠들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10일 대구시내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대학생들이 제각각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이들은 가족 모임에서 대화 대신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어른들도 술자리에서 카톡이나 페이스북을 하기 바쁘다. 이처럼 손에 없으면 불안증세까지 보인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요즘 부모들에게 자녀의 스마트폰은 '웬수' 같은 존재다. 채팅은 하루 2~3시간이 기본. 눈이 획획 돌아가는 게임을 서너 시간씩 하면서도 부모와는 눈 한 번 맞추는 일이 없다. "그만 좀 해라"는 호통은 듣는 둥 마는 둥, 밥상머리에서도 스마트폰만 쳐다본다. 비싼 아이템을 마음대로 결제해서 요금 폭탄을 맞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밤에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잠든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집단따돌림이나 넘쳐나는 성인 음란물, 게임 중독 등을 생각하면 당장 뺏고 싶지만 발작하듯 떼쓰는 아이에게 주지 않고 버틸 재간도 없다. 부모로선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자녀의 스마트폰, 과연 줘야 할까 빼앗아야 할까.

◆집집마다 '스마트폰 전쟁'

회사원 김모(47) 씨는 두 달에 한 번씩은 작은아들 스마트폰 분실신고를 한다. 실제로 휴대전화를 잃어버려서가 아니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도록 아예 차단하기 위해서다. 1주일 정도 후에 돌려주면 며칠 간은 고분고분하지만 원상태로 돌아가기 일쑤다.

김 씨가 스마트폰을 사준 건 2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이는 학교와 학원 수업시간과 자는 시간을 빼고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아이는 잘 때도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잠들 정도였다. 참다못한 김 씨는 집 안의 무선공유기를 숨겨 와이파이를 쓰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쓰기 위해 공유기를 켤 때마다 아이는 부리나케 달려와 카톡에 매달렸다. 김 씨는 "초등학생일 때는 그래도 부모 말을 듣더니 중학생이 되고서는 통제가 안 된다"면서 "어르고 달래봐도 말을 듣지 않아 스마트폰을 확 부숴버릴까 고민 중"이라고 푸념했다.

박모(49) 씨는 고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찾는다. 아이가 인터넷 게임과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경향 때문이다. 폭풍 같은 사춘기였던 중학교 2학년, 아이와 갈등은 풀어지지 않은 채 곪아갔고, 고교에 입학하며 박 씨 부부의 통제 밖으로 벗어났다.

밤새 인터넷 게임을 하다가 학교를 빼먹기도 다반사. 온라인 게임을 막으면 스마트폰으로 튀었다. 아이는 평일에는 스마트폰을, 주말에는 인터넷 게임에 몰두했다. 제지하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참다못한 박 씨는 아이와 함께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아이는 심각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1년 넘는 노력 끝에 부모와의 관계는 꽤 회복 중이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박 씨는 "그저 사춘기려니 하고 넘겼다가 훈육을 하는 시기를 놓쳤다"면서 "지금은 인내심을 갖고 예전의 착한 아들로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라고 했다.

◆나이들면 자제? 천만에!

자녀의 스마트폰 구매 이야기는 집집마다 대충 엇비슷하다. "엄마, 스마트폰 사줘." 이런 말을 듣자마자 대번에 사주는 집은 없다. "안돼"라는 답에 온갖 애교가 동원된다. "아이~사주세요." "안된다니까!" 엄마가 화를 내면 아이는 되받아친다. "우리 반에 스마트폰 없는 애가 나밖에 없다고! 다른 애들은 다 있는데 왜 나는 안 사주느냐고!" 엄마는 한동안의 고민 끝에 협상에 들어간다. "그럼 스마트폰 사주면 학원 숙제 잘할 거야?" "당연하지". "알았어, 약속 꼭 지켜야 돼!"

하지만 엄마는 이미 진 게임이다. 1주일 정도 반짝 학원 숙제를 하던 아이는 원래대로 돌아간다. 스마트폰 쳐다보느라 숙제 따위는 할 시간이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일곱 살 난 아들을 두고 있는 서남주(39) 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올해 초 큰딸에게 스마트폰을 사준 서 씨. 내키지 않았지만 혼자 소외된다는 딸의 하소연을 무시할 수 없었다. "원래는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주지 않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공부도 안 하겠다, 학원도 안 가겠다, 밥도 안 먹겠다며 떼를 쓰면서 계속 부딪히는 데 견딜 재간이 없었죠."

하지만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통에 시력이 크게 떨어졌고, 덩달아 집중력도 저하됐다. 말리는 부모를 피해 아이는 밤에 몰래 일어나 스마트폰을 썼다. 보다못해 스마트폰을 빼앗았다가 소리를 지르고 울고 불며 난리를 치는 통에 애를 먹기도 했다.

아이들이 부모를 졸라 스마트폰을 사는 과정은 복권이나 도박, 주식, 낚시와 비슷하다. 안될 듯하면서도 한 번씩 성공하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떼를 쓰게 된다.

부모는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들어준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정말 간절히 원하는데 들어주자"는 마음이지만 아이는 다르다. "떼를 쓰니까 되는구나. 다음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부모들의 행태 때문에 아이들이 '떼쓰기'에 중독되는 셈이다.

◆걷잡을 수 없는 중독부작용

스마트폰 중독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부작용도 속출한다. 게임이나 SNS 중독, 유해 콘텐츠 노출, 온라인 따돌림, 학습능력 저하, 부모-자녀 관계 문제, 학교 거부, 우울증 등 다양한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SNS를 이용한 집단 따돌림의 형태인 '카따'는 잔인하고 집요하다. '카따'는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통해 괴롭히는 행태다. 피해 학생을 대화방으로 초대한 뒤 여러 사람이 단체 욕설이나 굴욕적인 사진을 올리며 비난을 한다. 피해 학생이 카톡방에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계속 '초대하기'를 해서 괴롭히기도 한다. 이른바 '카톡 감옥'이다. 80~100명이 피해학생을 방으로 초대해 의미 없는 말을 던지며 피해학생의 휴대전화를 마비시키는 경우도 있다.

성인 음란물 등 유해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3 청소년 매체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휴대전화를 이용한 성인물 접촉 경험은 2011년 4.5%에서 지난해 16.1%로 3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성인물은 갈수록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자극에 둔감해지면 음란물이 실제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만든다. 심할 경우 성범죄로 이어지거나 음란물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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