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기다리는 사람들] 현지 원정응원 떠나는 배효숙 씨

입력 2014-06-07 08:00:00

"2002 열기 속에서 나 있을 곳은 현장, 확실히 느꼈어요"

프리랜서 배효숙(40) 씨는 요즘 하루를 이틀 같이 살고 있다. 20일에서 29일로 잡혀 있는 브라질 응원 일정을 맞추느라 미리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붉은악마 회원인 배 씨는 대구 붉은악마에서는 유일하게 브라질로 원정 응원을 간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함께 브라질로 가겠다던 회원들이 하나 둘 사정이 생겨 결국 혼자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코 혼자는 아니었다. 붉은악마 회원은 아니지만 평소 축구 응원을 함께하던 지인 2명과 함께 응원 길에 오른다.

지난 4년간의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배 씨는 붉은악마 소속이지만 단체 응원 일정에서는 빠졌다. 붉은악마 응원 일정이 자신이 보고 싶은 경기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비행기부터 숙소 예약까지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다. 지난 2월부터 비행기 표를 구하기 시작해 싼 가격에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비록 국제선 3번, 국내선 4번 환승 끝에 목적지인 상파울루에 도착하는 먼 여정이지만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생각으로 피곤함을 견디기로 했다.

숙소 예약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열흘 동안 머물 곳으로 호텔과 호스텔을 알아보았는데 모든 웹 사이트가 포르투갈어로 돼 있었던 것이다. 영어 서비스도 없어 결국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서야 예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숙박비도 문제였다. 평소 같았으면 우리나라 돈으로 1박에 10만원 정도 했을 숙소가 50만~60만원을 훌쩍 넘었다. 그래도 '한 번뿐인 기회'라는 생각으로 기쁘게 예약했다. 배 씨는 "준비 기간 동안 번거로운 일도 있었지만 모든 과정을 내 손으로 직접 해내면서 브라질이라는 나라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 같다"며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배 씨는 축구를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해야 직성이 풀리는 '직관족'이다. 평소에는 포항 스틸러스를 응원하러 전국 곳곳을 누빈다. 이런 배 씨도 2002년 이전에는 집에서 보는 축구와 경기장에서 보는 축구의 차이점을 전혀 몰랐다. 2002년 우연한 기회에 한일 월드컵 미국전을 관람하게 됐는데 그때 붉은악마의 응원을 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구나!'라는 가슴 속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축구장에서 열정적인 응원을 할 때의 뻥 뚫리는 쾌감은 배 씨가 삶에서 느끼는 큰 행복이다.

배 씨는 브라질 월드컵 원정 응원에 대비해 지난 4년간 스페인어도 공부했다. 그는 "포르투갈어를 배워야 했지만 대구에는 포르투갈어 학원이 없었어요. 꿩 대신 닭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했죠. 부족한 실력이라 보디랭귀지가 더 많이 쓰일 것 같긴 하네요"라고 말했다. 배 씨는 스페인어 외에도 연습하는 게 있다고 살짝 귀띔해줬다. 바로 강도가 총을 들이댔을 때 손을 드는 연습이다. "주변에서 워낙 치안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해서 같이 가는 사람들끼리 맹연습 중이에요"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축구의 나라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축구를 즐길까?'라는 부분이 배 씨의 최대 관심사다. 2012년 영국 올림픽 때도 원정 응원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영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 축구 경기가 아닌 경기에도 관심과 열정을 보이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브라질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과는 또 다르게 축구를 즐길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어요. 열흘 동안 그들처럼 축구에 흠뻑 빠져 있다가 오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배 씨는 "대표팀이 경기를 '잘'하기 보다는 부끄럽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또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가 된다면 어떤 결과든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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