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림읍 중산간의 밝은오름 옆에 위치한 이시돌(isidole) 목장에는 '테쉬폰'이라는 특이한 건물이 있다. 이라크 전통 가옥으로 군 야전 막사와 비슷한 형태지만 지붕이 물결 모양처럼 굴곡지고 경사가 더 급하다. 제주의 거센 바람과 눈을 이길 수 있는 이런 형태의 집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초다. 당시 이시돌 목장의 인부 숙소로 처음 지어지면서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이 가옥은 현재 유기농 우유와 치즈, 무항생제 쇠고기 등을 생산하는 이시돌 목장의 상징이다. 이시돌 목장은 가톨릭 사제인 패트릭 맥글린치(임피제) 신부가 조성한 공동체다. 1954년 한국에 온 그는 제주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수직물 사업과 청년 교육에 앞장섰다. 양'돼지 사육으로 시작된 이시돌 목장은 제주 축산업의 초석이 됐다.
우리 사회가 공동체의 가치에 처음 눈을 뜬 것은 반세기 전 이방인 사제들에 의해서다. 태백시 매봉산 기슭의 성공회 예수원 공동체나 그저께 선종한 정일우(존 데일리) 신부가 일궈낸 '복음자리'도 그런 경우다. 복음자리는 고 제정구 의원과 함께 도시 빈민 운동을 벌여온 정 신부가 도시 철거민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경기도 소사와 소래 인근에 위치한 복음자리 마을은 1977년 재개발로 터전을 잃은 도시 빈민을 위해 시작된 공동체로 당시 영등포의 판자촌들이 헐리면서 오갈 데 없는 170가구가 처음 자리를 잡았다. 이후 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목동 등지의 철거 사업이 벌어지면서 이들의 자립을 위해 딸기잼을 만들어 판 것이 복음자리 잼의 시작이다.
과일가공 전문업체인 복음자리는 2009년 대상그룹에 인수돼 현재 자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식품기업의 잼에 비해 가격이 더 비싸도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최근 잼 분야의 국제 올림픽 격인 '월드 오리지널 마멀레이드 어워드'에서 아시아 최초로 최고상을 받은 것도 그 명성을 짐작게 한다.
평생을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한 이방인 사제들의 봉사와 희생정신 때문에 우리 사회가 좀 더 윤택해지고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흘린 땀이 그 무엇보다 값지다. 이시돌의 우유와 치즈, 복음자리 잼은 가난하지만 빈곤하지 않은 공동체 정신의 대표적인 산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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