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0여 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집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사의 원인이 천재지변이 아닌 철저한 인재이고 희생자 대부분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기에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와 슬픔이 더욱 크다. 선진국 문턱에 와 있음을 자부하던 국민들의 자긍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국내외 언론들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102년 전 북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타닉호 참사, 59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시운마루호 참사와 비교하며 21세기 대한민국의 후진성을 비판하고, 국가 브랜드 가치 하락을 보도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과 함께, 정말 이러다가 '대한민국호'가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하지나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의 길지 않은 역사 동안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를 모두 이룬 세계 유일무이한 국가이다. GDP가 세계 15위, 무역규모가 세계 8위이다. 과학기술 측면에서도 SCI 논문 게재 수가 세계 10위, 국제특허 출원 수가 세계 4위에 도달했다. 어두운 단면도 곳곳에 있다. 국가부패지수는 OECD 34개국 중 27위이고, 법질서 준수지수는 27위에 불과하다. 자살률, 교통사망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청소년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경제 및 과학기술의 경이적 발전과 사회적 후진성이 공존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어느 한국 주재 외국특파원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기적을 이룬 나라, 행복을 잃은 나라"라고 표현하였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가 사회적 후진성을 탈피하지 않고는 선진국에 결코 진입할 수 없음을 통절하게 느끼게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선진국가 실현이 산업시대의 경제성장 지상주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사회 선진화가 수반되어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가르쳐 준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식 선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들이 준법정신, 배려정신, 장인정신을 갖춰야 한다. 만약 세월호 선주가 준법정신이 있었다면 세월호는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세월호가 침몰했더라도 배려정신의 선장과 승무원, 장인정신의 해양경찰이 있었다면 대부분의 승객들은 구조되었을 것이다. 둘째, 사회 작동시스템의 선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실력보다 학연, 혈연, 지연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유착의 고리를 끊기 쉽지 않고 관피아가 활개치기 마련이다. 인맥보다는 실력을 중심으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일이 진행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직 거버넌스(Governance)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경우 조직의 기관장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상명하달식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이래서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없고, 구성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 리더는 조직의 장으로서 최종 책임은 지지만 권한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에게 위임하여야 한다. 국가 통치자도 미국 트루먼 대통령처럼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The buck stops here)라는 투철한 책임감은 느끼지만 권한은 관계 장관에게 위임해야 한다. 2001년 미국 911 테러사고 시 사태 수습의 모든 권한은 대통령이 아니라 뉴욕 소방청장에게 주어졌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들은 '자발적 응집력'의 독특한 DNA를 보유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국민들의 자발적 금 모으기로 극복했고, 2002년 월드컵대회에서 붉은 악마를 비롯한 전 국민의 자발적 응원이 월드컵 4강 신화를 낳았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이런 '자발적 응집력'의 DNA가 대한민국 사회 선진화를 추진하는 동력이 되어 우리나라가 선진국 진입에 성공한다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으리라 생각한다.
신성철 DGIST 초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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