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입력 2014-05-30 10:41:26

아쉽게도 매일 보던 어느 방송매체의 TV 뉴스를 얼마 전부터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보더라도 아주 짧아졌다. 방송국 내부의 다툼 때문이다. 사장의 퇴임을 요구하는 사내 가족들의 주장에 맞서 사장 본인은 결코 물러 날 수 없다고 한 데서 파행이 발생하여 지속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 그러나 자기편 주장만 하다 보니 타협이 안 된다. 그 결과 피해는 애꿎은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시청료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알권리와 문화향유권을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크고 작은 갈등과 반목이 너무나 빈발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은 대가도 적지 않게 지불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사회적 갈등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간주될 정도이다. 그런데 모든 사회적 갈등의 시작은 자기주장은 옳고 상대방 주장은 틀리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더 발전하면 자기가 하는 것은 항상 옳고 정당하다는 아집으로 나아간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애당초 관심 밖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찌 자기만 옳고 상대는 모두 틀릴 수 있겠는가? 얼굴 모양이 제각각이듯 삶의 생각과 입장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회적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고 내 생각과 남의 입장을 절충하고 타협하여 조화점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여 나가는 리더십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조화롭게 조정하며 이끌고 나아가는 리더십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리더를 찾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위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큰 나무가 없다면 스스로 큰 나무가 되어야 하는 이치처럼, 우리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할까? 훌륭한 롤모델을 찾고 배워야 한다. 하지만 주변에 그런 리더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누구에게 배워야 할까?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지만 다행히 우리 역사 속에 훌륭한 스승들이 있다. 솔선수범하며 나라를 동방예의지국으로 이끌었던 리더들인 '선비'이다.

선비는 순수 우리말이다. 한자어로 굳이 표현한다면 '군자'(君子)가 그 의미에 가장 가깝다. '논어'에 보면 군자와 소인을 대비시킨 적절한 구절이 나온다. '군자는 조화를 추구할 뿐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할 뿐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군자는 자신의 주관을 지키면서 남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인격이다. 사람은 서로 색깔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절충과 조화를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선비는 이처럼 수양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를 추구해 나가는 인물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선비가 도야하는 수양의 내용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정신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선비의 이런 의미는 '선비 유(儒)'자의 구성원리 속에서도 또다시 확인된다. '유(儒)'는 '사람 인(人)'과 '구할 수(需)'가 결합된 글자이다. '사람됨의 이치(人)를 추구하는(需) 사람' 그래서 '세상 사람들(人)이 필요로 하는(需)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 수 있다. 학덕을 겸비하고 실천해 나가는 사람, 그래서 모두가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런 인격체가 바로 선비인 것이다. 바로 가난한 나라 조선이 세계사에서도 드문 500년 장수 국가를 꾸려 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다.

갈등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자극제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갈등을 억압하거나 무마하는 물리적 리더십이 아니라 그것의 원인을 성찰하고 남의 입장을 고려하는 도덕적 리더십이다. 선비는 이점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우리 사회가 고민하는 갈등 해소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결국 상대방의 허물을 탓하기에 앞서 자기 스스로 선비처럼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

김병일/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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