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초보 농군 귀촌일기] 아침 들깨, 저녁 참깨

입력 2014-05-29 14:26:04

이른 아침부터 이웃집 부부가 이랑을 사이에 두고 발을 맞춰 걷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다정해 보인다. 지나는 길이지만 부러운 마음에 가만히 들여다봤더니 부부는 그냥 걷고 있는 게 아니라 폭이 넓은 이랑을 검정 비닐로 덮고 있는 중이었다. 저 비닐 위로 깨순이 올라올지 콩잎이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뒷모습에선 벌써 한바탕 깨가 쏟아지고 있었다.

'로타리를 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면 농업에 첫발을 뗀 거나 다름없고, '아까시 꽃이 필 때 참깨를 심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 '상농군'이라는 말이 있다. 겨울을 지내는 동안 딱딱하게 굳어 있던 흙을 뒤집어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일을 두고 '로타리 치기'라고 하는 것을 나 역시 숯골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알았다. 이 로타리 치기는 농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흙이 부드럽지 않으면 작물의 뿌리가 잘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초보 농군인 우리를 위해 마을 이장님이 관리기로 로타리를 쳐주었다. 하지만 이웃에게 자꾸 부탁하기도 미안한 일이어서 우리는 지난가을에 중고 경운기 한 대를 장만하고는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봄이 되자 남편은 600여㎡ 남짓 되는 텃밭에 경운기를 사용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횟수의 로타리를 쳤다. 덕분에 밭에 들어가면 발이 살짝 빠질 정도로 흙이 부드러워졌다. 우리는 폭신폭신해진 밭을 들여다보며 어떤 작물을 심으면 좋을지 즐거운 고민에 빠져들었다. 아침에는 들깨를 심어야겠다고 작심한다. 참기름보다 들기름이 몸에 더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듯했고, 들깨는 병충해에도 강한 작물이어서 모종만 심어놓으면 타작까지 힘들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저녁이면 참깨를 심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흔들린다. 오후에 빈 밭을 보고 지나던 동네 분들이 참깨만큼 쉬운 농사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텃밭과 이웃하고 있는 이장 댁 밭이나 집 앞의 개울 건너 있는 노인회장 댁 밭을 들여다보면 상추, 열무, 부추, 대파 등 갖은 채소들이 골고루 잘 심어져 있다. 매일 건너다보는 남의 밭에는 하룻밤 자고 나면 그만큼 더 초록빛이 짙어가고 작물에는 윤기가 흐른다. 우리 부부는 작년의 텃밭 농사를 거울삼고, 이웃한 밭을 참고서 삼아 열심히 곁눈질을 한다. 작년에 스무 그루를 심었지만 몇 개 따먹지도 못한 옥수수와 자리만 많이 차지했던 방울토마토는 심지 않았다. 그만큼 텃밭에는 빈자리가 늘었고 우리의 고민도 깊어졌다.

농업인들에게 작물 선택은 일 년 농사의 핵심이다. 누구나 자신이 짓고 있는 농산물 가격이 잘 형성되기를 기대하지만 시세를 짐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는 지난겨울이 춥지 않아서 채소의 작황이 다른 해보다 좋다고 한다. 벌써부터 배추나 마늘, 양파의 홍수 출하를 예측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조바심으로 기른 작물을 시장으로 내보내지도 못하고 자신의 손으로 갈아엎는 그 마음을 지켜보는 일은 안타까움을 넘어선 괴로움이다.

사는 일은 늘 이렇게 선택의 갈림길에서 서성대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정말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일상의 평범한 선택이 모여서 개인의 삶이 되고 역사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아무리 사소한 선택도 쉽게 할 수가 없다.

시골에선 5월에도 눈이 내린다. 아침저녁으로 달콤한 향을 내뿜던 아까시나무 꽃이 한꺼번에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겨울에 첫눈이 내리는 풍경만큼이나 아름답다. 이 꽃눈이 다 지기 전에 우리는 참깨를 심었다. 참깨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같은 이랑에 들깨를 심을 수 있다는 소중한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올가을에 참깨만 먹게 될지 참깨와 들깨 둘 다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 선택에 대해서 우리는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힘든 선택의 경우가 도처에 깔려 있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애(귀촌 2년 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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