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노출된 소녀 도희(김새론)가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영화 '도희야'(감독 정주리). 참혹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품은 영화는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 배경이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자연경관의 마을인 것 같은데, 극 중 도희에게 일어나는 일은 관객의 마음을 짓누르게 한다.
또한 안타까운 일을 당한 아이는 너무도 해맑아서 오히려 슬퍼 보인다. 그런 소녀에게 구원자처럼 등장한 파출소장 영남(배두나). 개인적인 문제로 좌천돼 이 마을에 온 영남은 도희를 보호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도희의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 탓이다.
배우 배두나(35)는 "도희와 영남 모두 외로운 인물이다. 하지만 도희는 그 외로움을 아예 느끼지도 못하는 아이"라며 "도희를 보고 있자니 안쓰러웠다"고 회상했다. "가끔은 정말 아름다워서 슬프게 보이는 게 있잖아요. 또 해맑아서 슬픈 것도 있고요. 그런 마음이었어요."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도희야'에 출연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5분 만에 결정했다. 감독 미팅도 하지 않고 결정했다. 외국에 머물던 중 출연 제의를 이메일로 받았고, 읽자마자 하고 싶다고 했더니 오히려 제작사 쪽에서 놀랐었다고 떠올렸다.
"여러모로 스토리에 반했었죠. 특히 도희 캐릭터에 빠졌어요. 솔직히 20년만 젊었어도 제가 연기해보고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저는 한국영화에는 특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힘으로 이 영화가 끝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죠."
배두나는 "솔직히 '5분 만에 결정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니깐 '영화가 오픈됐는데 별로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을 많이 하긴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도희야'는 제67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올라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배두나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자신이 작품을 결정하는 데 꽤 괜찮은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은 지지로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떳떳하고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작품"이라서 더 즐거운 듯했다.
그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봉준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워쇼스키 남매 등) 천재 감독님들에게 선택을 받은 적이 많다"며 "내 과거의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더 좋은 길로 가는, 선택을 잘하고 싶다. 이것저것 소모해서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제동이 걸리는 것은 팬들이 내게 주는 믿음 때문인 것 같다"고 웃었다. "내 오래된 팬들이 그렇게 은근히 부담을 준다"면서도 그 기대가 싫지 않은 듯했다.
"전 다재다능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도희야'처럼 확신이 있는 건 두말하지 않고 덤비지만 조금이라도, 한 신이라도 못할 것 같은 것은 과감하게 포기해요. 주변에서 '왜 그 작품 안 한 거야?'라고 물으면 전 '나 놀이기구 못 타'라고 말해요. 연기할 때 필요한 거잖아요. 솔직히 시나리오 문체가 싫어서 못한 경우도 있긴 하고요."(웃음)
김새론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배두나는 이 청소년 연기자를 극찬했다. 김새론이 연기를 잘한 게 맞지만, 배두나와 있어서 더 눈에 띄는 것 같다고 하자 "내가 아니었어도 새론이는 잘했을 것"이라고 추어올렸다. 촬영 현장에서 김새론은 보호 대상이었다. 역할도 그렇고, 영화 내용도 청소년이 감당하기 힘들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새론이가 이준동 제작사 대표님과 이창동 감독님에게는 딸 같은 존재였다"며 "우리가 보호해야 할 배우였다. 또 본인이 짊어질 게 많았다"고 짚었다. 배두나는 "처음에 새론이가 이 역할을 거절했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그 마음을 이해했다"고 떠올렸다.
어린 후배를 칭찬했지만, 그가 맡은 역할도 만만찮게 힘든 역할이었다. 배두나는 "이창동 감독님이 내게 치어리더 같다는 표현을 써주셨다"고 웃었다. "(송)새벽이도, 새론이도 역할 자체가 예민한 거였어요. 또 제가 이 영화를 한다고 함으로써 프로젝트 시동이 걸린 거나 다름없었거든요? 스태프 중에는 제가 선택했다고 하니 열심히 하겠다고 하신 분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원동력이 없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그래서 더 외롭긴 했지만요."(웃음)
이 영화를 살린 또 다른 주역 송새벽도 빼놓으면 서운할 것 같다. 극 중 송새벽은 이제껏 웃기는 배우로만 소비된 것이 억울했던 듯 제대로,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깜짝 놀랄 게 틀림없다. 배두나도 동의하는 바다. "송새벽이 나온 '마더'와 '방자전' 등을 봤는데 전 그 친구가 웃기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섬뜩함이 있거든요. 새벽이한테 제가 그랬어요. '이 영화를 보면 송새벽 언제 나오느냐?'고 그럴 거라고요. 물론 새벽이는 안 믿긴 했지만, 영화 나온 걸 보고 만족해하더라고요. 하하하."
외국 작품 활동도 하는 배두나이지만 한국영화를 향한 열정이 더욱 더 크다. '도희야'를 들고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했으니 프랑스 영화 관계자도 배두나에게 러브콜을 보내겠다고 하자 "에이~ 안 돼요. 안 돼. 영어도 간신히, 2년 동안 배웠는데…"라며 웃어넘겼다. 그러면서도 "미국 영화에 나오기도 했지만 그래 봤자, 한국 배우는 한국 영화에 있을 때 빛이 나고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것 같다. 그게 더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어머니(배우 김화영) 이야기도 했다. 어머니와 작품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니 "영어 시나리오가 되면서부터는 안 하게 됐다"며 "하지만 '도희야'는 보여드렸는데 정말 좋아하셨다. 솔직히 칭찬을 잘 안 하시는 분인데 '오래간만에 좋은 영화 했다'고 칭찬해주셨다"고 즐거워했다.
한편 배두나는 최근 할리우드 배우 짐 스터게스와의 열애 사실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현장에서 인정해 국내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국내외를 오가는 작품 활동에 더해, 사랑도 국제적으로 키워갈 전망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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