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지 표밭, 훑어본 표심] 경주시장 선거, 폭로전 얼룩

입력 2014-05-28 10:25:34

"허리 밑까지?" "물증 있다" "엉성기럽다"

캠프 관계자의 잇단 구속이 상대 후보 탓이라는 경주시장 선거는 음해와 비방, 폭로로 얼룩지고 있다. 최양식 새누리당 후보는
캠프 관계자의 잇단 구속이 상대 후보 탓이라는 경주시장 선거는 음해와 비방, 폭로로 얼룩지고 있다. 최양식 새누리당 후보는 "경주가 천년 먹을 양식을 최양식이 준비하겠다"고 했다. 박병훈 무소속 후보는 "중앙정치만 바라보는 시장은 되지 않겠다"고 선거공보에 썼다. 황진홍 무소속 후보는 "3번째 도전이다. 모든 걸 걸었다"고 표심에 호소했다. 서상현 기자

"살고 싶지가 않다. 얼굴을 들 수 없다."(박병훈 무소속 후보)

"허리끈 밑으로는 이야기하는 게 아닌데…. 시민을 농간하고 있다."(최양식 새누리당 후보 측)

"역대 가장 혼탁하다."(황진홍 무소속 후보)

경주는 살벌했다. 캠프 관계자가 구속된 뒤 약이 바짝 오른 후보들은 폭로하고 비방하고 대응하느라 분주했다. 캠프마다 보도자료를 만들고 고치느라 어수선했다. 27일, 지방선거를 일주일 남겨둔 경주시장 선거전은 진흙탕 선거라는 표현으로도 충분치 않을 만큼 혼탁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최양식 새누리당 후보는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방 소파에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표정은 어두웠다. 박 후보 측이 최 후보를 두고 며칠 전 지역 모 사찰 여신도와 부적절한 관계라고 폭로했다. 인터뷰 중에도 관계자들이 불쑥 들어와선 대응 보도자료 내용과 문구를 논의하고 나갔다.

최 후보는 "우리도 상대방(박병훈)에 대해 (폭로할 것을) 많이 아는데 안 한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디펜스만 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효 선대위원장은 "개인의 사생활 부분이지만 우리도 많은 것을 쥐고 있다. (박 후보는) 자신을 먼저 알아라. 이렇게 추악한 일을 벌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가 받아든 최종 보도자료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사실이며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 중앙시장에는 5일장이 섰다. 수세미, 식칼 등을 파는 난전 상인은 지역신문을 읽고 있었다. "엉성시럽다. 이리저리 들리오는기 참…"이라며 혀를 찼다.

삭발한 머리카락이 조금 자란 박병훈 후보는 새누리당 공천 신청에서부터 전화기 착신전환 사건, 후보 사퇴, 재심의 항의까지 있었던 일을 소상히 설명했다. 얼굴은 까맸고 입술은 부르텄다. 최 후보와 여신도 관계 폭로에 물증이 있느냐고 물었다. 박 후보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가슴이 아프다"면서 "확신한다. 허위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무실 출입구 왼쪽 방에서 A4 용지 네 장 분량의 '최양식 경주시장 후보 불륜의혹 진실공개' 문건을 볼 수 있었다. 박 후보의 부인을 수행하고 있다는 박홍락 씨가 쓴 글 속엔 정액, 음모, DNA 분석 등의 표현이 있었다. 벌거벗은 선거전 속에서 박 후보는 이날 상을 받았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유권자운동본부가 사무실로 찾아와 '6'4 지방선거 좋은후보' 17명을 발표했는데 그 속에 있었다.

황진홍 무소속 후보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최양식 박병훈 후보는 진흙탕 싸움으로 더는 경주시민을 우롱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날 사무실에서도 황 후보는 "최 후보는 사찰 여신도와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에 대해 당당하게 시민께 해명해야 할 것"이라 말했고, "박병훈 후보는 자신의 명의로 (여신도에게) 사과문을 썼고 그게 공개됐는데, 이 점을 사과하고 책임이 있다면 후보 사퇴하라"고 말했다.

박 후보 측 선거사무원 2명이 전화착신전환으로 구속됐다. 최양식 후보 캠프를 방문했던 산업단지 조성업체 관계자는 주민에게 돈을 돌렸다 적발돼 구속됐다.

경주시민은 천년고도 경주의 이미지를 이렇게 실추시킬 수 있느냐고 입을 모은다. 시장통을 돌며 만난 상인과 주민들은 선거 이야기에는 손사래를 치며 입을 닫았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김일윤 후보가 돈을 뿌렸다가 구속됐다. 혈세로 재선거가 치러졌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 손동진 후보가 기자들에게 돈을 돌렸다가 적발돼 공천을 박탈당했다. 지저분해진 선거판이 되물림되고 있다.

최'박'황 후보 모두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정책과 비전을 갖고 공약 대결을 하자"고 했다. 어느 길이 올바른지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모습이다. 경주시장 선거에는 이광춘 통합진보당 후보와 최학철 무소속 후보도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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