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캠퍼스 젊은이들…"바뀌지 않는 일당독주, 취업 준비가 더 급해"
21일 오후 경북대에서 만난 대학원생 김모(31) 씨는 지방선거 날짜를 모르고 있었다. 대구시장 후보가 누군지 모르니 기초 및 광역의원, 기초단체장에 출사표를 낸 후보를 알 리 없었다. 지지하는 후보가 있을 리 없었고, 누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약속을 지키는 걸 못 봤어요. 관심을 둬봤자 짝사랑이잖아요." 생애 첫 투표를 할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후보별 공약을 비교하고 나름 낫다 싶은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지만 결과는 특정 정당 후보의 독주. 그 뒤로도 몇 차례 선거를 치렀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선거에 무관심해진 이유가 됐고, 더욱이 취업난에 허덕이는 상황이라 선거에 눈과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고 했다.
6'4 지방선거 열기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대학생 김모(23) 씨는 "권리 행사를 위해 무효표라도 행사하라고 하는데, 바뀌지 않는 일에 아까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시장은 표만 의식하는 전시행정만 한다고 생각해 행정가라는 생각이 안 든다. 대구경북만큼 중앙무대에서 힘 있는 정치인들이 많은 지역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이 대구경북만큼 없는 곳도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씨가 운을 띄우자 옆에 있던 친구들도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쏟아냈다. 양모(28) 씨는 "공약을 잠깐 살펴봤는데, 젊은 층을 위한 내용이 없어 투표장에 갈 필요를 못 느꼈다"며 "특정 정당만 밀어주는 지역 현실에 내 표가 소수 의견으로 치부되는 것이 답답하다"고 했다.
"대구시내를 다니다 보면 아직도 대선 기간 같아요. 후보들이 자기 홍보는 없고 박근혜 대통령이랑 찍은 사진만 걸어놓고. 이러니 누굴 찍겠어요." 충남에서 자랐다는 이모(25) 씨는 대구에서 선거전을 처음 봤을 때 적잖이 놀랐다. 이명박정부 때는 이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대구를 도배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그런 광경을 대구에서 처음 봤다"고 했다.
그러자 양 씨가 거들었다. "일당 독재체제에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러니 '무도'(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줄임말) 선거보다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니겠어요."
시장 후보들이 젊은 층에 관심이 없다는 데도 의견이 모였다. 젊은 층을 위한 공약도, 스킨십도 없다는 것이다. 양 씨는 "후보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공약 만들려고 애쓰기보다는 대학가 술집이라도 다니면서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김 씨는 "그렇게 공약을 만들어도 과연 약속을 지킬까"라며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시장 후보들이 어느 학교 출신인지, 누구 밑에서 정치 입문을 했는지, 거물 정치인 누구랑 친한지를 홍보하기보다 자신의 정치 이력 중 어떤 공약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알리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자녀들 둔 3040 학부모들…"투표 안했는데…이번에는 아이 위해 꼭 동참"
대부분 학부모인 30, 40대 여성들의 선거 민심은 세월호 참사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자식 잃은 단원고 학부모들의 마음을 읽듯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이번 선거야말로 특정 정당 후보에게 무의미한 한 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 정치권에 경각심을 일깨워줄 기회라고 본다.
22일 오후 대구 달서구 상인동 한 아파트단지 앞 카페. 삼삼오오 모인 30, 40대 주부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초등학교 학부모 3명의 이야기다. 초교 3학년 딸이 있다는 이모(35) 씨가 이날 아침에 조용히 명함만 나눠주는 선거 운동원들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한모(34) 씨는 선거 이야기가 나오자 인상을 구기며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솔직히 난 이번엔 선거 참여도 안 할까 싶어. 자꾸 실망할 일만 일어나니깐 선거판 꼴도 보기 싫어. 우리 남편은 '이민 갈까'라는 소리까지 했다니깐."
이 말에 김모(34) 씨는 초교생 아이들에게 투표도 교육이라는 점을 심어줘야 한다고 했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에도 아이 둘 데리고 투표장 갔었어. 투표는 국민의 권리라고 하는 어려운 말을 못 알아들어서 우리가 투표해야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설명해주니깐 잘 알아듣더라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좋은 사람을 뽑아야지."
같은 날 대구 중구 한 백화점 문화센터. 중'고생 자녀를 둔 여성들의 선거 이야기는 진지하면서 치열했다. 한 회원이 "이번엔 정신 차려야 한다"며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고교 2학년 아들이 있다는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당만 보고 투표했던 일들을 후회한다고 했다.
부모의 마음은 비슷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한 여성은 "아무래도 교육감 공약을 유심히 보게 된다. 근데 추상적인 용어만 있어 그냥 듣기 좋은 말만 하는 느낌이었다. 예전 같으면 애들 공부시키는 공약만 봤겠지만 지금은 안전에 먼저 눈이 꽂힌다"고 했다.
공약 얘기에 조용히 있던 이모(42) 씨가 입을 열었다. "전 솔직히 투표 잘 안 했어요. 내가 투표한다고 뭐 달라질까 싶었죠. 근데 세월호가 크긴 컸는지 이번엔 남편도 나도 꼭 투표하자고 다짐했어요.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사람에게 표를 던져 보려고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미도다방·노래교실 실버…"공천 받으면 당선된 줄, 서민 무서운 줄 잘 몰라"
21일 오후 대구 중구 미도다방. 어르신 6명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모(72) 씨가 먼저 전라도 다녀온 얘기를 꺼냈다. 거기서 만난 또래 주민들이 대구 사람이라는 말만 듣고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반박하고픈데 할 말이 없더구먼. 나도 지금껏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찍어줬으니깐 말이지. 이번 시장은 야당후보에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투표소에 들어가서 생각대로 찍을지는 모르겠어. 허허."
권모(72) 씨는 손사래를 쳤다. 절대 '운동권'은 찍지 않겠다고 했다. 부인 김모(69) 씨는 "박 대통령이 TV에 나와 눈물을 흘리는데 나도 같이 울었잖아. 이번 선거 때 새누리당에 표라도 던져줘야지. 대통령이 너무 불쌍하더라고…." 선거 얘기가 이어지자 윤모(75) 씨는 버럭 화를 냈다. "그 배(세월호)에 정치인을 싹 다 집어넣었어야 했어. 결국 정치를 잘못해서 이 모양이 된 거라니까. 이번 선거에선 시끄러운 유세차량이 안 보여 속은 시원하네."
야당 출신 시장 얘기를 처음 꺼냈던 김 씨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기초의원을 찍는 게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를 쳤다. 김 씨는 "달서구에 사는데 구의원이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다.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며 시민 무서운 줄을 모른다"고 혀를 찼다.
다른 노인은 "이 나이가 되면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데….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의 애들이 그렇게 가니까 나라에 환멸이 느껴진다"고 한숨지었다.
21일 오후 대구 중구 동인동 주민센터 노래교실. 50~70대 여성 20여 명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방선거에 대해 묻자 권모(76) 씨가 손가락으로 1번을 가리키며 "새누리당이 잘돼야 박근혜 대통령이 힘을 얻고, 세월호 참사도 잘 마무리될 거야"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이곳 노래교실에서 6'4 지방선거에 관한 이야기 대부분은 새누리당으로 귀결됐다. 후보의 됨됨이나 공약'경력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었다. 김모(57) 씨는 "대구는 새누리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끝까지 잘하도록 밀어줘야 한다"고 했고, 박모(66) 씨도 "여당 대통령과 함께 손발을 맞춰가며 일할 수 있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파장도 새누리당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고, 오히려 세월호 참사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애꿎은 피해를 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한 70대 여성은 "대통령이 눈물까지 흘렸다. 왜 하필 세월호 사고가 박 대통령이 있을 때 터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래교실이 '새누리당 물결'로 뒤덮여 있는 가운데 한 60대 여성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여기 대부분이 새누리당 지지자들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대구에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무조건 야당 후보 지지하겠다 "고 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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