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잃은 다문화 부부, 보상금 가톨릭복지회 기부

입력 2014-05-22 09:44:56

5세 막내 농수로 사고 참변 "형편 어려운 아이들위해…"

지난해 대구 동구 용계동 농수로 사고로 둘째 아들 승우를 잃은 여수근 씨가 20일 자택에서 승우의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지난해 대구 동구 용계동 농수로 사고로 둘째 아들 승우를 잃은 여수근 씨가 20일 자택에서 승우의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친구들을 위해 쓴다면 승우도 아마 기뻐할 거예요."

얼마 전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신기어린이집 원장이었는데, 그는 한 학부모가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며 큰돈을 기부하려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원장의 주선으로 이뤄진 복지회 관계자와 만난 학부모는 여수근(47) 씨였다. 그는 "좋은 일에 써줬으면 좋겠다"며 800만원을 내놓았다.

"둘째 아들의 보상금 일부입니다."

그는 지난해 6월 아들 승우(당시 5세)를 잃었다. 대구 동구 용계동의 한 농수로에서 물놀이하다 그만 목숨을 잃은 것. 물살이 거세 주민이 안전 철망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던 바로 그 농수로였다.

아들의 죽음은 여 씨에게서 행복을 앗아갔다. 2005년 늦은 나이에 베트남에서 온 부인을 만난 여 씨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이를 깨물고 열심히 일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으나, 얼굴엔 늘 웃음이 가득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기초생활수급자 지위에서도 벗어났다.

그런 그였기에 아들의 죽음은 너무 억울하고 슬펐다. 그래서 농어촌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올 2월 승소해 보상금을 받았다. 많은 돈을 받게 됐지만 기쁘지 않았다.

그때 여 씨의 머릿속에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형편이 어렵던 시절 큰아이와 둘째 승우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장학금을 받는 등 큰 도움을 받았던 게 생각났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승우도 바랐을 겁니다."

베트남인 아내는 "승우가 기뻐할 것"이라며 더 적극적이었다.

여 씨가 건넨 돈을 받은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는 기탁자의 뜻을 받들어 12개 어린이집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여 씨는 9월이면 셋째가 태어난다고 했다. "동생 승우를 잃은 첫째 아들 영주(10)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승우가 다시 우리 품에 오는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다음 달이 승우의 1주기라 다시 슬픔이 밀려오지만 승우가 또래 친구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아빠 엄마 울지 마세요'라고 말할 것 같아요. 승우 덕분에 웃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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