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지나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지난 글을 보내고 한 달이 지나도 세월호 이야기가 안겨준 슬픔은 가벼워지기는커녕 더욱 깊어졌습니다. 저를 자꾸 눈물 나게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제단에 옷이 담긴 나이키 종이가방이 올랐습니다.
지난달 세월호 참사 사고가 난 뒤 학생들이 하나 둘 시신으로 돌아올 때쯤 팽목항 신원확인소 앞에서 한 어머니가 "시신이 나올 때마다 '아디다스, 나이키, 폴로'같은 메이커 상표 입고 있다고 하는데 돈이 없어 그런 걸 못 사줬다. 그래서 우리 애 못 찾을까 봐 걱정된다"는 말을 했다는 사연이 보도됐었습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아팠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게 어떤 건지도 경험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의 영정 사진이 모셔진 합동분향소에는 어느 조문객이 편지와 함께 마음을 전했습니다. 편지에는 "어머니가 좋은 옷 못 입혀서 널 못 만날까 봐 걱정한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며 "꼭 엄마 손잡고 얘기해 이제 괜찮으니까 울지 마라고…"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옮기면서도 눈물이 자꾸 납니다.
#제가 아는 청와대 전직 조리장이 한 분 있습니다. 남자인데도 가난하던 시절 자신을 챙겼던 대통령 이야기에 아직도 눈물을 글썽이는 마음이 고운 사람입니다. 제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에도 두어 번 출연하셨던 인연으로 기억하던 그분이 다른 요리사의 얼굴과 함께 신문에 실렸습니다. 팽목항의 유가족들을 위한 급식소가 두 군데로 줄었다고 하니까 할아버지 조리장이 목포를 찾아간 겁니다. 서울~목포 간 물리적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늦어서 미안하다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여전히 어색해하고 수줍어하던 눈물 많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저를 또 울립니다.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던 세월호 양대홍 사무장이 한 달 만에 무전기를 손에 꼭 쥔 채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나 혼자 살겠다며 어린 학생들을 사지에 내팽개친 채 도망쳐 나온 다른 고위직 선원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탈출하지 않은 사람. 통장에 돈이 있으니 큰아들 등록금으로 써라.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던 게 그의 마지막이었습니다. 2012년 채널A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양대홍 사무장. 승객들의 농담을 받아주고 자는 승객 이불까지 챙기고 한 평 남짓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에게 카메라맨은 물었습니다. "뭐가 가장 힘드냐고" 그랬더니 어머님과 형제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꺼냅니다. 막내아들이었던 그는 청각장애가 있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제주 가는 1박 2일 동안도 가족을 못 잊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늘나라로 가던 발걸음이 떨어지기나 했을까? 눈에 밟혀 한 걸음이나 제대로 옮겼을까? 양 사무장의 형제들은 어머니가 충격받으실까 일 때문에 멀리 외국에 나갔다고 할 예정이랍니다. 자꾸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눈물 나게 하는 이 많은 사연의 공통점은 너무나 선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유명 메이커 옷을 사주지 못해 가슴이 아팠던 부모와 그 이야기를 남의 일이라고, 신문 방송에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내 새끼 같고 내 가족 같아서 밥차를 끌고 가보는 할아버지. 내 아들이 귀하니 다른 사람의 아들도 귀한 줄 알아 죽음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물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 아버지. 돈 안 벌어도 좋으니 제발 이런 일은 다시는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장례식장 대표. 그는 수익금 5천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의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지만, 절대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발전기는 바람, 석탄, 물의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듯 우리의 이런 에너지를 정책으로 바꾸면 그것이 바로 한 걸음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선한 사마리아인들의 에너지를 대한민국의 에너지로 바꾸어 줄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언경/채널A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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