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생각들을 인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인지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눈이 있습니다. 이걸 메타인지라고 하지요. 어떻게 하면 메타인지를 상승시킬 수 있을까? 바로 '설명'에 그 답이 있습니다. 설명을 해보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인과관계, 즉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그리면서 정리가 됩니다.('EBS 다큐 프라임,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5부, 말문을 터라' 중에서)
E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0.1%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전국모의고사 전국석차가 0.1% 안에 들어가는 800명의 학생들과 평범한 학생들 700명을 비교하면서 도대체 두 그룹 간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탐색해 보는 부분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0.1%에 속하는 아이들은 평범한 학생들과 비교하여 IQ도 크게 높지 않고,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메타인지라고 했다.
메타인지는 개인의 인지적 활동에 대한 지식과 그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계획, 그 계획의 실행과정을 평가하는 것에 이르는 전반적 과정이 메타인지라는 것이다. 소위 '인지함을 인지하는 것', 또는 '알고 있음을 아는 것'이 메타인지다. 결국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메타인지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설명할 수는 없는 지식이고, 두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설명할 수도 있는 지식이다. 단지 알고 있다는 느낌에는 메타인지가 작용하지 않지만 남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을 구분하는 최고의 방법은 '설명'이라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결국 설명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앎의 영역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0.1%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반드시 능사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나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도 메타인지의 능력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생까지 일방적인 강의를 듣고 있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강의를 듣고, 메모하고, 정리하고, 그것을 평가하는 모든 단계에 설명의 영역은 빠져 있다. 설명이 빠진 지식은 사실 죽은 지식이다. 소비적 지식이다. 이제는 학생들이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토론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지닌 지식은 진정 살아있는 지식이 되고, 생산적인 지식이 될 수 있다.
현재의 교육 평가로는 이러한 메타인지 능력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1990년대 초반, 수능시험 언어영역 문항을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20년이 지났다. 신선함이 그대로 유지될 리가 없다. 시대가 달라졌으니까. 주입된 지식의 양을 평가하는 시대는 이미 아니다. 인간이 지닌 지식의 양은 컴퓨터 칩 하나에 저장된 것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이제는 양을 넘어서야 한다.
수능시험보다는 논술 능력이, 논술 능력보다는 심층면접 능력이 시대가 요구하는 평가에 어울린다. 수능시험 만점을 맞았다고 '저 학생은 정말 인재구나' 하는 마음이 진실로 들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10분 정도의 심층면접으로 학생의 바닥까지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수능시험 100번 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평가가 거기에 있는 셈이다. 맞췄다고 그 문제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틀렸다고 그 문제를 다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설명을 하지 못하면 분명 그 문제를 모르는 것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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