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식과 애통해하는 어머니'라는 주제는 서양의 예술가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 슬픔이 극대화된 장면은 아마도 예수의 시신을 자신의 무릎 위에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일 것이다. 이를 우리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피에타'(Pieta)라 부른다. 어머니에게 자식이란 자기 몸을 빌려 태어난 또 다른 자아이자 궁극의 목적이다. 예수의 죽음에서 마리아가 맛본 상실은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절망의 바닥이었을 것이다.
르네상스가 낳은 천재작가 미켈란젤로는 약관 24세에 '로마의 피에타'라는 불후의 명작을 완성했다. 차라리 소리 내 운다면 모를까 그 슬픔을 가슴속에 묻으려는 어머니의 고통을 이토록 리얼하게 그려낸 것은 그 어떤 작가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솜씨였다. 시간은 정적 속에 멈춰버린 듯하고 어머니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은 경건하고 순수하기까지 하다. 비통보다는 극도의 절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각 작품이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옷 주름이나 피부는 살아 숨 쉬는 듯 정교하고 매끄러우며, 내면 깊은 곳을 응시하는 듯한 표정은 보는 이의 정신을 빼앗는다. 그리고 조형미마저 완벽하여 온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다.
이 형용할 수 없는 어머니의 슬픈 감정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수없이 겪는 상실의 고통에 은유 되기 일쑤였다.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공감의 대상이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일생 '피에타'라는 작품을 4점이나 남겼다. 그것은 한 천재를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하는 일종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까지 매달렸던 마지막 작품도 '피에타'이다. '론다니니의 피에타'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그러나 너무나 엉성하다. 초기의 그 완벽했던 기법은 사라지고 '로마의 피에타'와는 너무나 큰 대조를 보여 도저히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예수와 마리아의 자세부터 불안정하다. 직립에 가까운 어정쩡한 자세로 시신을 부축해야 할 마리아는 오히려 예수에게 기대선 형국이다. 참척(慘慽)의 고통 속에서 아들의 시신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어머니! 털썩 주저앉지도 똑바로 일어서지도 못한 채 겨우 기대어 서 있을 뿐이다. 이토록 고단한 부동(不動), 이토록 아픈 자세가 또 있을까? 여기에는 얼굴의 표정마저 생략되어 있어 차마 그려낼 수 없는 그녀의 비통함은 극에 달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그 슬픔의 덩어리를 부여잡고 함께 울었을 것이다. 완성된 작품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수없이 망설인, 수없이 고통스럽게 포기해버린, 그리고 수없이 떨렸을 손의 리듬이 생생하게 찍혀있기 때문이다. 물질로서의 육체는 덧없는 것이므로 그것의 재현 또한 무의미하다. 원래 돌덩이가 하나였던 것처럼 두 사람은 한 덩이가 되었다. 그는 돌을 인간의 몸으로 만든 후 다시 그 몸으로부터 정신을 끄집어 낸 것이다.
우리는 '로마의 피에타'에서 성스럽게 재현된 슬픔의 종교적 정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들다 만 듯한 이 '론다니니의 피에타' 앞에서는 인간의 모순된 운명을 격렬하게 직시하는 한 늙은 천재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무릎을 꿇은 그에게는 오만함이나 잘난 척하는 모습 대신 절절한 간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는 더 이상 고독하거나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마력적인 힘에 쫓기는 불안한 예술가가 아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예술가적 사명 위에 어떤 높은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보통의 인간이다. 늙은 천재가 눈치챈 것은 다름 아닌 '거룩한 슬픔'이었다.
세월호는 떠났다. 탐욕과 거짓과 무책임과 이기심을 싣고 껍데기는 떠났다. 그 대신, 아직 피지 않아 더욱 아름다운 또 다른 슬픔의 덩어리 피에타를 남겼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은 더 이상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늙은 천재가 깨달은 그 거룩한 슬픔에 기대어서라도 다시금 일어나야 한다.
계명대학교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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