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욕 먹을 이유

입력 2014-05-13 07:36:23

며칠 전 한 젊은 기자가 모임에 갔다가 큰 창피를 당했다고 한다. 사연인즉, 기자(記者)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참석자들에게 돌아가며 심한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언론의 보도행태에 국민적 비판이 쏟아지던 시점이라 별다른 변명도 못하고 그저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와 관련한 신문, 방송, 종합편성채널 등의 보도행태를 보면 언론 전체가 뭇매를 맞더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가족을 잃고 구조된 어린아이를 붙잡고 인터뷰를 하는가 하면, 방송 카메라 촬영을 한답시고 사망자 시신 운구를 가로막고, 수많은 추측보도와 오보…" 그리고 보도국장이 사표를 내면서 공정보도를 가로막았다며 사장을 질타하는 KBS사태까지 터지고 나니 언론인 전체가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든 시대가 됐다. '신문기자들이란 밀과 왕겨를 갈라놓고는 왕겨만 인쇄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일 지는 미처 몰랐다는 비아냥이 많다.

요즘 언론의 위기라고 한다. 매년 신문, 인터넷 언론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언론사 경영상황이 악화되고 언론인 전체의 수준도 낮아졌다. 무엇보다 언론사의 경영상황 때문에 자본권력, 즉 광고주에게 휘둘리고 눈치 보는 사례가 더 많아졌다.

이 같은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글로벌기업 삼성전자와 업계의 대표적인 전문지인 전자신문과의 공방전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3월 전자신문이 휴대폰 갤럭시S5 출시를 앞두고 '삼성전자의 렌즈 생산수율은 20~30% 수준에 불과해 자칫 갤럭시S5 생산에도 차질이 생길 공산이 크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이 기사가 오보라며 정정보도를 요청했고, 전자신문이 이를 거절하자 3억원대 소송을 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전자신문의 최대 광고주다. 기자들은 월급 삭감을 감수하고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하니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 보수 진보언론을 가리지 않고 신문, 방송에서 삼성 비판기사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거액의 광고료를 내놓고 있으니 비판기사가 나올 리 없다.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대형사고 때에는 추측보도와 오보가 판을 치고, 대광고주에게는 아무런 소리를 못하고 있으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누군가 "뉴스가 없다는 것은 반가운 뉴스다. 언론인들이 없다는 것은 더 반가운 뉴스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런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자기반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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