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느끼는 데자뷰(dejavu) 즉 언제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이 그냥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으면 좋겠다. 기울어진 여객선에 수백 명의 학생들을 가둬둔 채 말 한마디 없이 도망쳐나오는 선장과 선원들의 반인륜적 망동(妄動)을 영화 장면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고 보면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지몽(豫知夢)이 현실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책임자는 도망가고, 정부는 무능하기 짝이 없으니, 시련은 고스란히 평범한 국민이 감당해내는 그런 스토리, 겪어본 듯한 장면이다. 예견된 재난을 눈감아준 대가로 '관피아'는 배를 불리고, 멋모르고 당하는 억울한 고통은 오롯이 백성의 몫인 사극(史劇)의 한 장면 같은 메시지가 아닌가.
한국 재난영화로 눈길을 끌었던 '괴물'과 '연가시', '감기' 등은 외국의 재난영화와는 뚜렷이 다른 성향을 띠고 있다.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여기엔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적 원형이 투영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득은 물론이거니와 위험과 손실마저 지위에 따라 불공정하게 분배되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인 '단테스 피크'나 '딥 임팩트', '아웃브레이크' 등에서 주인공은 주로 관련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유능한 공무원이다. 그 주인공은 재난을 가장 먼저 감지할 뿐만 아니라, 참사를 예방하거나 인명을 구조하는데 사력을 다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반대의 구도를 지니고 있다.
'괴물'에서처럼 주인공이 하층민이거나, '연가시'와 '감기'에서와 같이 전문가라 하더라도 조직에서 소외된 개인 또는 서민의 신분이다. 이들이 시민들과 연대하거나 심지어는 노숙자'노동자와 힘을 합쳐 사태 해결에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정부는 피해자 구조나 사태 수습에 진력하기보다는, 국민을 속이거나 더러는 적으로 삼아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가히 무정부적이고 민중적인 서사 구도이다. 여기서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리고 몽진(蒙塵)한 선조 임금과 6'25전쟁 때 시민을 버려둔 채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피란에 앞장선 이승만 대통령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한 연계일까. 세월호 참극이 역사적 실제를 통해 무의식에 각인된 체험이 영화 같은 현실로 재연된 것이 아니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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