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내주셔서 감사해요 짹짹" 붉은머리오목눈이 식구 주택 창틀에 둥지

입력 2014-05-09 11:25:03

"우리 집 욕실에 새 식구가 이사 왔어요. 어찌나 빨리 크는지 매일 일찍 퇴근해 이놈들 보는 낙으로 삽니다."

8일 오후 안동시 안기동 안기2길 한 주택. 박경훈(28) 씨가 잠자는 아기라도 깨울세라 조심스레 안방 욕실 문을 열었다. 경훈 씨가 가리킨 창문 아래 얼기설기 지은 둥지에는 아직 채 눈도 뜨지 못한 새끼 새 6마리가 곤히 낮잠을 자고 있었다. 경훈 씨는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새인데 여기에 둥지를 트고 새끼까지 낳았다"면서 "어미는 낮에 수시로 들어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저녁에는 품고 잔다"고 했다.

새 둥지를 처음 발견한 이는 경훈 씨의 아버지 박상영(57) 씨였다. 지난달 20일 욕실 구석에 나뭇가지가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본 박 씨가 청소하기 위해 들여다봤다가 엄지손가락만 한 새알들을 발견한 것. 그날 저녁 박 씨 일가는 가족회의를 열었고, 만장일치로 "새가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욕실을 빌려주자"고 결론을 내렸다.

행여 새가 놀랄까 욕실 문조차 잘 열지 않던 박 씨 가족은 열흘 뒤 막 알에서 깨어난 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욕실 전등을 켜자 새끼 새 6마리가 일제히 입을 벌리며 울어대는 모습을 눈에 들어왔다. 이후 가족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문을 열지 않기로 다시 약속했다.

느닷없는 욕실 세입자 덕분에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경훈 씨의 어머니. 욕실에 있는 세탁기를 쓰지 못해 거의 손빨래를 하기 때문이다.

경훈 씨의 어머니는 "남편의 새 사랑이 대단해서 안방 욕실은 새들의 차지다. 새들이 잘 있는지를 확인할 때가 아니면 욕실 문은 절대 못 열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훈 씨 어머니의 새 사랑도 남 못지않다. 행여 문제가 생길까 봐 어미 새가 나간 틈을 타 주기적으로 건강상태를 확인했고, 주변에 전기 플러그선 등을 이용해 둥지를 단단하게 모아주기도 했다. 또 어미 새가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대야에 물을 받아 욕실에 두었다. 경훈 씨 가족 모두가 한마음으로 새들이 모두 잘 자라서 자연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었다.

경훈 씨는 "나이가 찬 아들이 결혼하지 않아서 부모님이 새들한테 정성을 더 쏟는 것 같다"며 "10월에 결혼하는데 빨리 손주를 안겨 드려야겠다"고 한바탕 웃어 보였다.

전문가들은 새가 집 안에 둥지를 트는 일이 흔한 경우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한 수의사는 "새들은 굉장히 예민해서 시끄러운 곳에는 결코 둥지를 틀지 않는다"며 "이 집 주변에 먹이가 많고 집안 분위기가 조용하고 화목했기 때문에 새끼를 낳고 키우는 것 같다"고 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 흔히 뱁새라고도 하며 몸길이 약 13㎝이다. 몸의 윗면은 붉은 갈색이며 아랫면은 누런 갈색이다. 둥지는 농가 울타리 안에도 틀지만 흔히 관목이나 풀 속에 튼다. 알은 4월에서 7월 사이에 한 배에 3∼5개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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