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오월의 웃음꽃, 모란

입력 2014-05-09 07:13:58

사월과 오월 사이, 꽃눈이 방울방울 터진다. 꽃구경 나서기 좋은 오월에는 꽃 아닌 것이 없다. 달력에도 빨간 꽃이 춤을 춘다. 오월은 감사의 꽃물결로 출렁이는 달이다.

오월을 장식하는 꽃 중에 모란이 있다. 모란은 꽃이 고귀하여 부귀영화 혹은 덕성스러운 미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요즘은 철철이 마라톤처럼 이어 피는 화려한 꽃들이 조경수로 각광을 받지만 모란을 대신할 만한 꽃은 없다. 모란은 꽃 크기에서 일등이요, 짙은 자주색의 붉은 광기 또한 일등이라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집안의 뜰에는 어김없이 모란이 일등 자태를 뽐낸다.

모란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국민의 꽃으로, 우리나라에 건너 와서도 당연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화가들이 그림 소재로 즐겨 찾고, 미술애호가들은 부귀의 상징으로 모란 그림을 사랑한다.

4년 전, 오월 초순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모란도' 병풍을 복원하여 전시한다기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10폭 병풍의 '모란도'는 활짝 흐드러지게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황홀한 자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슴에 묻어둔 연인을 만난 듯 심장이 쿵쾅거렸다. 사진으로 보다가 실물을 직접 대하니 얼굴마저 붉어졌다. 향기에 취해서 한참이나 마주 앉아 눈빛을 주고받았다.

'모란도'의 하루는 햇살이 환한 오후였다. 서로 돋보이기 위해 곱게 치장하고 앞쪽에서부터 뒤쪽까지 얼굴을 내민 채 줄지어 서 있다. 다양한 각도의 포즈를 취한 모란 식구들이 화목하기 그지없다. 형형색색의 미소마저 빛나고 있었다. 이심전심으로, 나도 미소를 지었다.

모란이 웃음과 밝음, 행복, 부귀를 주기에 주로 병풍으로 제작되어, 잔칫날이면 귀빈으로 초대되었다. 병풍은 행사를 빛내는 조연으로서, 화려한 차림새로 '기쁨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모란도'를 보고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날따라 차가운 비바람이 불어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모처럼 서울나들이에 친구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이동했다. 광화문 근처 커피숍에 들어서자 친구는 모란처럼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30년 지기인 우리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주로 내가 수다를 뗘는 편이고, 친구는 싱긋이 웃는 게 답이다. 우리는 서점에 들러 책을 둘러보고 헤어졌다.

지금 '모란도'를 보면서 친구를 떠올린다. 그는 모란도의 병풍처럼 언제나 내 곁에 서서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다. 고마운 마음을 전할 사람이 이 친구뿐이겠는가만 잊고 지낸 이들이 있다면 다시 점검해볼 일이다. 그에게 모란을 선물하고 싶다. 더불어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아버지께도 모란꽃을 바친다.

김남희 화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