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 청동검 대구 출토, 고대 유라시아 넘나든 교역망 증거
1956년 대구시 와룡산 기슭에서 청동검이 도굴꾼에 의해 출토됐다. 이 동검들은 골동품상을 거쳐 은밀하게 유통되다가 한 수집상(호암미술관)의 손에 들어갔다. 이 칼 중 '조형안테나식동검'이 포함되었는데 이 검이 초기 철기시대 청동기 전파 경로를 밝혀줄 국보급 문화재였다.
길이 32.2㎝, 너비 3.1㎝, 칼자루 길이 12.5㎝의 이 동검엔 놀랍게도 유라시아의 청동기 문화 코드가 모두 녹아 있다.
우선 이름부터 풀어보자. 조형(鳥形)이란 칼자루 끝에 달린 새 모양 장식을 말하고 '안테나'란 칼자루 양끝이 벌레 더듬이(안테나)처럼 둥글게 구부러진 모양을 의미한다. 여기에 전체적인 모양이 날렵한(細形)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세형동검이다.
이렇게 해서 전체 이름이 '조형안테나식 세형동검'으로 붙여졌다. 1척 남짓한 검 하나에 시베리아 스키타이 양식과 유럽 기사들의 검 문화, 중국의 금속기술이 집약된 것이다.
◆2천 년 전 에게해에서 첫 등장, 세계로 전파=칼, 검, 도(刀), sword, knife, 라피에르, 플뢰레, 에페…. 칼을 지칭하는 어휘는 많다. 일반적으로 칼은 외날을, 검은 양날을 특징으로 한다. 학계에서는 좀 더 범위를 확대해 창(槍), 낫, 꺾창 같은 무기류도 칼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고고학적으로 칼에 대한 관심은 주로 위세품(威勢品)과 무기에 대한 관점으로 집중된다. 둘 다 고대사회, 생활문화, 정치 변동을 이해하는 데 민감한 코드로 작용한다.
구리는 인류가 최초로 문명 이기(利器)의 수단으로 사용한 금속이다. 매장층이 지표와 가장 가깝고 융해점이 낮아 가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청동기는 도구들이 철기로 대체될 때까지 적어도 1천 년 동안 인류문명을 일군 소재였다. 동검은 기원전 2천 년쯤 에게해(海) 지방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몽골,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그 문명의 보폭을 넓혀갔다.
◆조형안테나검, 유럽, 시베리아 거쳐 한반도로=한국 동검의 대표적 양식은 세형동검과 비파형동검으로 정리된다.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고 익숙한 이름들이다. 이 검들은 형식, 스타일 면에서 중국 검들과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칼날과 손잡이가 일체형이 아닌 분리, 조립형이라는 점. 즉 날과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목재나 뿔 등 다른 부재로 접목해서 완성했다. 중국에서 제작된 대다수 동검이 주조(鑄造) 방식에 의한 일체형인 점과 뚜렷이 구분된다. 짧은 슴베(자루)와 검신 한가운데 다각형 무늬도 북방, 중국식 검과 한반도 양식을 구별하는 특징이다.
비파형동검은 외형이 전통 악기 비파의 모양을 하고 있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사진으로 언뜻 보아도 비파의 보디(body) 라인이 그대로 살아있어 하나의 공예품 같은 느낌이다. 전쟁무기인 칼과 악기의 조합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한반도 내에서는 현재까지 약 40자루가 발굴되었다. 함경도 지방을 제외하고 거의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주로 서부 지방에 많이 분포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조형안테나식동검에 대해 알아보자. 에게해의 니노아 시대에 처음 등장한 동검은 서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점점 장검화된다. 평지 전투가 일반적이었던 유럽에서 합리적인 변형으로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칼자루 두 끝이 위로 뻗어 올라가는 양식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안테나식' 칼자루 양식의 등장이다.
이렇게 유럽에서 출발한 안테나검은 동진(東進)해 시베리아, 몽골로 전파된다. 이 당시 러시아 남부 초원지대에서는 스키타이족이 대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유목민족의 전통을 이어받은 스키타이족은 장식에 동물, 맹수, 맹금을 많이 응용하는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스키타이 동물 양식'이다.
유럽에서 안테나검을 건네 받은 스키타이족은 다시 여기에 새(동물) 모양을 받아들여 새로운 검 스타일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이 조형안테나검이다. 다시 스키타이 문화는 유목민의 루트를 따라 남하하게 된다. 중국과 한반도를 거치면서 이동하던 동검은 대마도를 거쳐 규슈까지 이른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중국 동북지역과 한국, 일본을 아우르는 조형안테나동검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국보급' 조형안테나검, 대구서 3점이나 출토=이제 비산동 출토 조형동검을 들여다보자. 당시 와룡산 기슭에서는 모두 5점의 동검이 출토됐다. 동검의 칼자루는 대나무 모양처럼 마디가 있고 칼자루 끝 부분 장식은 오리 모양의 새 두 마리가 머리를 틀고 서로 마주 보는 형상이다. 오리의 몸체 측면엔 3개의 작은 구멍이 나있고 한국 세형동검의 일반적인 특징처럼 비산동 출토 검도 검신과 손잡이가 분리된 형태를 하고 있다.
비산동 출토 안테나검은 국보(137호)로 지정될 정도로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중'일, 동북아는 물론 유럽을 넘나들던 조형안테나검은 놀랍게도 대구에서 3점이나 출토됐다. 초기 철기시대에 대구엔 이미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국제교류망이 형성되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비산동에 이어 수성구 지산동에서도 조형안테나검이 확인된 바 있다. 역시 쌍조(雙鳥)형에 새 장식은 형태만 남아있는 후기 양식이었다.
비산동, 지산동 동검이 일반인 소장가에 의해 공개되었다면 2010년 봉무동 산업단지에서 발견된 검은 지역 연구기관(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직접 발굴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당시 원삼국시대 옹관묘에서 출토된 이 검은 대구가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국제적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평가된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의 김광명 책임연구원은 "봉무동 동검은 칼자루 끝 장식의 새가 약식화(略式化)된 형태"라고 말하고 "이런 모양은 시베리아, 한반도는 물론, 일본에서도 발굴된 적이 있어 유라시아의 청동기 문화 전파 경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라고 평가했다.
◆마무리하며=한반도 유물 중에 비교적 넓은 교역망을 가진 유물들이 많다. 좁게는 한반도 내에서, 넓게는 한'중'일이나 동북아까지 광역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형안테나검처럼 동북아, 유라시아를 넘나드는 대륙 단위 유적은 드물다. 대구의 조형안테나검에서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지역의 큰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오는 긴 동검의 여정. 대구는 그 문명의 끈을 이어준 작은 정류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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