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듣는 클래식]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입력 2014-05-01 11:36:18

우리들의 사고(思考)가 끝나는 곳에서 파가니니는 시작한다. 지난겨울 유난히 이 음악을 많이 들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알려진 음악가 중 가장 덜 낭만적으로 살았던 파가니니. 동시대를 살았던 리스트나 베를리오즈, 쇼팽, 슈만 등이 그 시대 음악적 로맨스의 주역이었다면, 파가니니는 괴기적 수수께끼의 주역이 아니었을까? 파가니니는 생전에 열두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다. 하지만 음악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아직 여섯 곡만 알려졌다.

그의 미발표곡이 남았다는 사실은 나를 포함하여 파가니니를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들의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파가니니의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즐겨듣는 것은 1975년에 녹음된 살바토레 아카르도 협연 샤를 뒤투아/ 런던 필의 '6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아카르도의 파가니니는 우아하지는 않지만 화려한 색조가 손으로 만져질 듯한 유화 같은 질감을 갖고 있는 느낌이다. 협주곡 1번 피날레 부분은 한 번의 활 놀림으로 여러 음을 한꺼번에 연주해내는 플라잉 스타카토다. 아카르도는 이런 테크닉에 통달해 있는 것 같다. 무료한 오후에 파가니니를 듣고 있으면, 완전히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의식적으로 음률을 따라가다 보면 묘한 긴장감에 사로잡힌다.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에 얽힌 작은 기억 하나가 있다. 몇 년 전, 우연히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의 'Far Beyond The Sun'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듣는 곡인데도 서론(인트로)과 곡 전반에 흐르는 멜로디가 너무 낯이 익었다. 도대체 이 익숙한 느낌의 정체가 뭔가? 궁금증이 일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수많은 곡이 머리 속에서 뒤섞인 탓에 그동안 들어온 음악이 LP와 CD뿐이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틀 동안 음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찾아낸 것이 바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이었다. 곧장 음반을 재생시키자 난제가 풀렸다. 음악이 집안 전체에 울려 퍼지면서 짜릿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격렬함이 몰려왔다. 10년 넘게 들어왔던 곡인데 어쩌면 이렇게 다르게 들릴 수 있을까?

잉베이 맘스틴은 'Far Beyond The Sun'에서 신들린 듯 격렬한 속주와 광기 어린 몸짓을 보여준다.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은 그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매개체였다.

'Far Beyond The Sun'은 잉베이의 파가니니에 대한 해석과 마찬가지다. 이후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6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곡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현대와 고전의 만남, 그로 인해 새롭게 해석되는 과거의 기억들. 참으로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것이 내가 매일 음악 듣기를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나는 또 파가니니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 기대감에 매일 똑같은 음반을 듣는 지금도 무척이나 가슴 떨리고 행복하다.

신동애(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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