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김씨도 아니면서 가락 김씨 춘향제에 가게 되었다. 가락국은 1세기 중엽 낙동강 하류에 형성된 철의 왕국이었으나 5세기 중엽 신라에 병합된 나라이다. 훗날 신라 진골에 편입되어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데 큰 몫을 한 김유신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12대손이다.
날씨가 좋았다. 봄볕은 따사롭고 꽃들이 만발했다. 물오른 나무들은 다투어 연두 잎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아악이 울리면서 전국의 가락 김씨 종친과 문중의 유림들이 청홍색의 관복을 입고 두 줄로 도열했다. 식은 4배로 시작했다. 배/흥, 배/흥, 배/흥, 배/흥. 절차에 따라 엄숙하게 제를 치르는 것을 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로 모아졌다. 인간에게 뿌리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은 제례가 끝나서도 이어졌다. 대명천지에 운명처럼 하나의 뿌리로 엮인 사람들이 술과 음식이 차려진 잔디밭으로 모여 앉았다. 인사를 나누며 술잔을 교환하는 그들의 모습은 원초적 동질감으로 편안해 보였다. 하나같이 모두 김수로와 허황옥의 자손들이 아니던가. 그들은 마치 두 어른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다정하게 불렀다. '우리 할아버님'은 김수로왕이요, '우리 할머님'은 허왕후였다. 시조 할아버님을 뵙기 위해 목욕재계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오십 대의 한 남자는 마이크를 잡더니 장사도 안 되고 일도 안 풀려 경주에 있는 김유신 할아버지 무덤을 찾아갔다고 털어놓았다. 그믐이라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었는데 바람이 불고 비까지 뿌렸지만 춥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다고 했다. 큰절 올린 후 무덤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 오니 마음도 가라앉고 기운도 생기더라고 하는 그는 1천300년 전에 작고한 조상을 대면이라도 하고 온 사람 같았다.
다음 날은 산청에 있는 가락국의 마지막 왕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에서 제를 지낸다고 했다. 나라를 빼앗긴 수치심으로 스스로 돌무덤을 자초했다는 구형왕은 김유신의 증조부이다. '전'(傳)자가 붙은 걸로 보아 그의 능이라는 확신은 없고 단지 그렇게 전해지고만 있다는 왕릉은 일반 무덤과 달리 가파른 산비탈에 주변의 막돌과 깬돌을 계단식으로 층층이 쌓아올려 만들어졌다고 했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한다지만 패자 또한 후대의 뿌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을 터였다. 귀가할 버스가 부릉부릉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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