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잘 지내지? 잘 지내야 해!

입력 2014-04-29 08:00:00

그래, 나는 경계를 가지고 논다 그것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경계는 이어진 곳이 아니라, 넘어가는 다리가 아니라 나를 지켜 주고 있는 극단이다 극단이다 이별이 허락하는 극단의 내 집이다 극단의 약이다 극약이다 부드러운 극약이다 나는 이 극약을 먹으며 논다 맛있는 슬픔, 오래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있고 네가 있다.(정진규의 시 '이별 1' 전문)

'잘 지내지?' 하는 일상적인 인사말에도 목이 멘다. 여백이 필요한 시간이다. 여백은 언제나 그리움의 무늬를 그린다. 어쩌면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그 빛이 금방 퇴색할 것만 같은, 그래서 그 위대한 크기 앞에서 인간은 난쟁이가 되어버리고 말 것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가 만들어내는 그리움은 위험하다.

그리움은 부재(不在)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오래전부터 부재에 익숙하다. 그리움이 간절해지면 언제나 그 경계에서 머물고 경계에서 놀았다. 경계를 넘어서면 다시 돌아올 수가 없기에 절대 경계를 넘지 않았다. 나와 너의 경계에는 늘 그리움이 바람에 흔들렸다. 슬픔보다, 이별보다 더 위험한 그리움이 경계에서 놀았다. 잘 지내지? 잘 지내야 해.

경계 바깥에서만 놀았던 젊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풍경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특별히 인상적인 풍경이라는 느낌도 없었고, 더구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풍경을 선명하게 기억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때 나에게 그런 풍경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했으며, 그때 내 곁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출렁이는 바닷물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는 무엇을 보든, 무엇을 느끼든, 무엇을 생각하든, 결국 모든 것은 부메랑처럼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그런 나이였던 것이다. 신기한 건 그때의 나 자신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도 풍경은 선명하게 남았다는 것. 그렇구나. 변하지 않는 풍경이 바로 기억의 본질이로구나.

나라가 온통 슬픔이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말이 말을 잡아먹으면서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신열로 밤새도록 내 안에서 흔들렸다. 그래. 이제는 슬픔은 지울 수 있도록 앞으로는 연필로 쓰기. 하지만 언제나 풍경은 예고 없이 내 마음속으로 옮겨왔고 내 마음속에서 자랐다. 자꾸만 내 다리는 진흙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비록 연필로 쓴 그리움이라 할지라도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그리움은 없다는 걸. 그래서 내 그리움은 언제나 수동적이다. 수동적으로 경계에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 능동적으로 경계에 머물 수는 없을까? 그래서 사이를 걸어갈 수는 없을까? 안타까운 시간들만 자꾸 흐른다.

존재하는 무엇인가는 언제나 자명하다는 것이 슬프다. 그것은 거기에 있고 이것은 여기에 있다. 그럴 때 그것과 이것은 독자적인 의미를 지닌다. 내가 걸으면 내 발걸음 아래에는 땅이 존재한다는 것, 그게 없으면 내 걸음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나이가 들면서 지금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자명한 무엇인가가 자꾸만 보여서, 드러나는 현재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아마도 경계가, 사이가 자꾸만 보이는 게다.

오랜 시간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다른 사람의 배경이 되어주는 풍경이라는 생각. 비록 초라하지만 별을 빛나게 하는 어두운 하늘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생각. 경계에 서서, 사이를 걸으면서 그것만을 자명함으로 채우고 싶은 것이 현재 내 욕망의 속살이다. 하지만 둘러싼 현실은 내 욕망이 향하는 길을 막아선다. 삶의 길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양떼구름 가득한 하늘로부터 쏟아졌다. 제발 좋은 나라에서 다시 살아가기를.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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