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입력 2014-04-28 08:00:00

김수환 추기경이 1951년 9월 15일 사제 서품을 받고 어머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김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이 1951년 9월 15일 사제 서품을 받고 어머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김 추기경은 "나는 주님의 부르심에 세상에서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겠노라"고 답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5월 8일(음력) 대구시 남산동 225-1번지에서 아버지 김영석(요셉)과 어머니 서중하(마르티나)의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29년 군위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33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입학했다. 1935년 서울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 입학, 1941년 졸업하고 일본 죠치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1942년 9월 일본 죠치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가 1944년 1월 학병으로 입대했고, 해방 뒤인 1946년 12월 귀국해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편입했다. 1951년 9월 15일 대구대목구 소속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51년 9월 안동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추기경은 생전에 "우리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별로 많지 않은데, 마음씨 착한 충청도 양반이셨다. 어머니는 본시 성품이 곧으신 분이셨고 거짓이나 불의와는 일절 타협할 줄 모르는 분이었다. 특히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면서 자식들 교육에 엄격하셨다. 자식들 교육에는 엄하셨지만 먹는 것, 입는 것은 마치 부잣집처럼 먹이고 입히셨다. 그 대신 사치란 있을 수 없었고, 심지어 엿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추기경이 어떤 집안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버지의 고향이 충남 연산인 만큼 김수환 추기경의 고향은 충청도다. 그러나 김추기경은 자신의 고향을 대구라고 말한다. 1984년 '샘이 깊은 물'과 인터뷰에서 "나는 대구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선산과 군위에서 자랐고, 내 위의 형들과 누이들도 대개 태어난 곳이 다르다. 우리 8남매는 충남 합덕에서 시작해 대구, 칠곡, 김천, 칠곡 이렇게 태어난 곳이 다르다. 우리 아버지 고향은 원래 충남 연산이지만 거기서는 박해시대에 이미 쫓겨났고, 친척도 아는 이도 전혀 없다. 그러니 고향의 정감이 가지를 않는다. 그보다는 경상도에, 그중에서도 대구에서 산 적이 시간적으로 더 많으니 우리는 모두 대구가 고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구대목구 소속으로 사제서품을 받은 김수환 추기경은 안동성당 주임신부를 시작으로 1953년 대구대목구장 비서신부, 대목구 재경부장, 해성병원 원장, 1955년 김천성당 주임신부 등을 역임했다.

1956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 뮌스터대 대학에서 신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1964년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 1966년 주교 서품 및 초대 마산 교구장에 착좌했고, 1968년 대주교 승품 및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다.

1969년 4월 30일∼5월 1일,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추기경 서임은 김 추기경 자신은 물론이고 한국인, 세계인 모두가 놀랄 만한 뉴스였다. 추기경 서임은 그 자체로 김수환 추기경과 한국 천주교회는 물론이고 한국에 영예였던 것이다.

김 추기경은 1970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1차 역임)을 역임했고, 1970년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1975년 평양교구장 서리, 1981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2차 역임)을 역임했다.

1998년 5월 22일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사임했다. 그 뒤로 실업극복국민운동 공동위원장,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국민재단 초대 이사장, 평화와 통일을 위한 복지기금 이사, 제2건국 위원회 고문, 2001년 사이언스 북스타트운동 상임대표, 2003년 생명21운동 홍보대사 등을 역임했다. 2009년 2월 16일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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