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거인에게 길을 묻다] 제3부 김수환 추기경 1)유머·소통 통한 통합의 리더십

입력 2014-04-28 08:00:00

'낮은 곳'으로만 향하는 리더십 '있는 곳'마다 웃음과 평안

김수환 추기경이 1987년 5월 전진상 복지관 후원회 미사에 참례한 후 후원회 사람들과 탁구를 하며 어울리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1987년 5월 전진상 복지관 후원회 미사에 참례한 후 후원회 사람들과 탁구를 하며 어울리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1989년 2월 19일
김수환 추기경이 1989년 2월 19일 '막달레나의 집' 식구들에게 건강하라는 덕담과 함께 5천원씩 세뱃돈을 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5천원씩을 주자 한 사람이 "아이도 5천원, 어른도 5천원, 추기경님 이건 좀 불공평 해요" 라고 하자 추기경은 껄껄 웃으며 "나한테는 자네들이 다 어린아이라네"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리더십은 국가나 기업, 사회 지도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리더십과 다르다. 보통의 리더들에게서는 인격적 완성과 사회적 완성이 함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의 리더십 핵심은 사목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신앙과 삶이 일치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지만 '권위'를 내세우거나 섬김을 받기를 원하거나 보통 사람과 '거리'를 보이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변화나 도전, 극복 등 국가나 사회 일반의 리더들이 보여주는 리더십과 달리 사랑과 섬김, 소통과 화해, 반성과 용서, 평화와 희망, 염치, 용기와 참여 등 영성적이고 사회적인 리더십이 함께 어우러지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편집자 주-

▷소통을 통한 통합의 리더십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마친 후 김수환 추기경이 가톨릭 성지인 프랑스 남서부의 소도시 루르드에 왔을 때 이야기다. 루르드는 김 추기경이 로마에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었다.

당시 현지 기자가 서울 성체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축하하면서 "한국 신자들의 신앙심이 대단하다"고 하자 김 추기경은 "한국 신자들의 신앙은 아직 대단히 얕은 수준이다"면서 "주님께서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는데 우리 신자들은 하느님도 잘 섬기고 돈도 잘 섬긴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 말은 한국의 종교적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표현은 아니었다. 아직 개발도상국으로서 한국이 처한 현실을 해외에 알리는 동시에 그럼에도 한국인의 신앙적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소탈과 친근의 리더십

김수환 추기경은 다른 어떤 지도자들보다 권위적인 위치에 있던 사람이다. 그래서 추기경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어려워하기 일쑤였다.

영국인으로 20대에 한국에 와서 가톨릭 기술원 원장을 지냈던 한 선교사(이름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김 추기경은 긴 여행으로 매우 피로함에도 추기경을 뵙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만났다. 한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이 만나고 싶다고 하면 모든 시간을 내서 최대한 만났다. 다른 일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만남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추기경은 매우 소탈한 태도로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한 번은 추기경님이 기술원에 오셔서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식사 중에 모두들 어려워하고 부끄러워하자 서양에서는 아버지가 포도주를 가족에게 부어주는 풍속이 있다고 하시면서 일일이 잔에 따라 주시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강요 아닌 유머의 리더십

추기경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추기경은 일찍이 일본에서 공부하고 신부가 된 후 독일에 유학하여 공부한 바 있다. 지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추기경님은 몇 개의 언어를 말하세요?"

그러자 추기경은 "난 두 개의 언어를 말합니다".

"어느 나라어인가요?"

지인들은 독일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참말과 거짓말이죠."

성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유머로 빗대어 말함으로써 좌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이렇듯 김수환 추기경의 리더십은 지식이나 신앙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온화한 표정과 웃는 얼굴, 유머와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지위 아닌 사람 그 자체로 존경"

대구에서 사목활동을 하는 한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 올랐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내가 그를 성공한 인물이라고 보는 이유는 그의 종교적 사회적 지위 때문이 아니다. 사람으로서 그에게 배울 것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1967년 로마에서 평신도 대회가 열렸다. 그때 김수환 추기경도 참석했는데, 그곳 평신도들이 사제, 주교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심하게 터뜨렸다. 이를 듣고 있던 영국인 선교사는 속이 상해 김수환 추기경에게 '신자들의 태도'에 관해 하소연했다.

김 추기경은 "우리 신부, 주교들이 평신자들을 여태껏 너무 어리게 취급했다가 갑자기 어른 대우를 하니, 신자들에게도 사춘기가 필요하지 않겠나, 그러니 우리가 참아야지!"하면서 평신도들을 감쌌다. 공의회 이후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바뀌면서 평신도들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추기경의 열린 마음과 이해심이 결국 신자들의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소통과 헌신으로 다툼이나 갈등 없이 전체를 이끌어가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였는데, 신부들 사이에서는 이런 김 추기경의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을 '서번트 리더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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