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4월 20일)은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죽은 후 3일 만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그리스도교 최대의 축제일입니다. 올 부활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보다 참담하고 암울함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잃은 제자들이 가졌던 참담한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제자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주님으로 믿었던 예수님, 그분은 온갖 기적을 통해 당신의 전능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분이 힘없이 유대인에 끌려가고 로마 군인들의 희롱을 받고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던 제자들은 참담하고 암울했을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났을 때 이들은 기쁨과 생명의 축제를 지냈습니다. 부활은 바로 이러한 생명과 희망의 축제인데 올 부활절은 암울하고 참담한 슬픔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는 300여 명, 특히 철없이 맑고 밝은 아이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세월호 참사 때문입니다. 부푼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325명을 비롯한 476명을 태우고 제주도로 항해하던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였습니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넘어 우리 모두를 참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꿈과 희망인 아이들이 제대로 탈출을 시도해 보지 못하고 못다 핀 꽃처럼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세월호는 아이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꿈과 희망마저도 가라앉혔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안전하게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간절히 바라며, 시시각각 보도되는 방송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국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이 현실이 되어 감에 따라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 앞에 누가 감히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갈수록 세월호 참사는 그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 총체적 부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서슴지 않는 파렴치함, 맡겨진 책임을 저버리는 야비함, 거짓말과 헛된 정보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허황함,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발뺌하는 얍삽함이 우리 국민들을 더욱 실망케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를 드렸지만 희생자가 늘어갈수록 구조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허무감이 엄습해 왔고, 우리 사회에는 우울증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어린 아이들과 가족들을 잃고 슬픔과 좌절에 빠져 있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실의에 빠져있는 사도들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부활한 예수님께서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라 하던 사도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희망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죽음과 같은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희망은 바로 부활입니다. 지금 이 땅에 필요한 부활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며, 새로운 삶의 태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나, 또 다른 우리가 겪는 고통입니다. 이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우리는 함께 부활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죽음으로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며 비뚤어진 세상 질서를 바로잡음으로써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
김명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국제다문화대학원장 timoteo@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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