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품 같은 고향 '64인 64색'…『나의 살던 고향은』

입력 2014-04-26 08:00:00

나의 살던 고향은/문무학'공영구'오철환 외 61명 공저/ 매일신문사 펴냄

옛 사람들은 태어난 마을에서 30리(12㎞) 밖으로 나가지 않고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평범한 남자들은 군생활을 빼면 줄곧 고향이나 인근에서 논밭을 갈며 살았다. 여자들 역시 결혼으로 이웃 마을로 이주했던 것을 빼면, 거의 평생을 한 마을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늙어갔다. 아이들은 10리(4㎞)가 넘는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기 일쑤였지만, 학교를 파하면 종일 노는 게 일이었다. 학원도 PC방도 없었다. 꼬마들은 계절에 맞춰 강과 바다, 산과 들판을 우르르 몰려다니며 어른이 되어갔다.

해방 후에도 한동안 이런 생활 패턴이 이어졌다. 그러나 1960년대 말, 70년대 산업화를 시작으로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정든 들과 강, 바다를 떠나 도시로 모여들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아놓고 떠났고, 어떤 이는 아무런 약속도 기대도 없이 솥과 도마, 이부자리를 챙겨 떠났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홀로 대처로 나간 사람도 있고, 코흘리개 자식을 주렁주렁 달고 익숙한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했던 중년 남자도 있었다. 그들이 고향을 떠날 때는 아침이었으나, 낯선 '대처'에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두려움과 기대와 막막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도회지에서의 첫 밤을 맞았다.

이 책 '나의 살던 고향은'은 고향을 떠났던 사람 64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낯선 도회지에서 만났던 외로움이나 고단함에 대해서가 아니라 고향에 살던 시절의 추억을 담았다. 2011년 7월부터 2012년 9월까지 매주 토요일 매일신문에 게재했던 글들을 묶었다. 글쓴이들 중에는 직업 문인도 있으나 대학 총장, 교수,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 글쓰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의 살던 고향은' 시리즈는 글솜씨와는 무관했다. 추억은 글솜씨와 무관하게 아련하게, 각자의 색깔을 갖고 연기처럼 뭉게뭉게 피어났다. 매일신문에 '나의 살던 고향은'이 연재될 당시 독자의 큰 관심을 끌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고향 이야기라면 나도 할 이야기 많다'며 글 쓸 기회를 부탁하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우리가 크던 시절, 아이들은 모두 콧물을 훌쩍거렸다. 그중에 유난히 콧물이 많은 아이가 있어서 그 애의 별명은 아이스케키. 지금은 미국에서 하이인텔리로 살고 있다. 그때의 아이들은 겨울만 되면 뺨이 터서 빨갰다. 여섯 자녀들을 사진기에 담는 것이 취미셨던 아버지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어릴 적의 사진을 많이 갖고 있는데, 겨울에 찍은 우리들 볼은 짙은 색이거나 빨갛다.'(박소경 경산 1대학 총장)

'시골의 하루는 일거리로 가득했고, 농사는 성실과 근면을 요구했다. 어린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눈 뜨면 학교 가기 전에도 소소한 일을 도와야 했다. 우물가에 가서 물 몇 양동이라도 길러와야지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 어른의 일이나 아이의 일이 별 차이가 없을 때도 많았다. 퇴비를 만들기 위해 거름과 짚을 섞으라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 양은 정말 산더미 같았다.'(문강명 문깡외국어학원 대표)

'유년의 땅에 돌아오면 누구나 지난날의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게 된다. 수로에 잠겨 첨벙대며 밤길을 따라오던 물속의 달, 집 뒤꼍까지 다가선 산 그림자, 무더운 여름 밤 무시로 불어오던 서늘한 바람, 하늘에 가득한 별과 꽁지에 파란 불을 달고 무수히 날아다니는 개똥벌레, 정적과 침묵…. 그런 것들이 겁 많은 어린 날의 우리를 떨게 했고, 섬뜩 거리게 만들었고, 까닭없는 공포감으로 몰아넣었지만 그 공포감이 우리를 순수하게 했다.'(도광의 시인)

연재 당시 제목이자, 이 책의 제목이 된 '나의 살던 고향은'은 동요 '고향의 봄' 노랫말의 첫머리에서 따왔다.

글쓴이는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

강문숙, 강용준, 공영구, 곽흥렬, 구석본, 권영세, 김광현, 김상기, 김성한, 김원중, 남병탁, 노명옥, 노애경, 노정희, 도광의, 류형우, 문강명, 문도영, 문무학, 문차숙, 박복조, 박상원, 박소경, 박해수, 박희정, 배철, 변정환, 사윤수, 성병조, 손동환, 송일호, 신광우, 신재기, 신홍식, 심형준, 오양호, 오정미, 오철환, 우문상, 이영철, 이응수, 이재윤, 이재호, 이정환, 이창환, 이춘근, 이희종, 장삼철, 장이규, 전상준, 정숙, 정재용, 정재호, 정태일, 제갈태일, 천정락, 최규목, 최춘해, 하청호, 함순섭, 황명자, 황무룡, 황영숙, 황현호 씨. 331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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