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이 원칙을 앞서는 대한민국…"우리 지역부터 바꿔 나가자"

입력 2014-04-25 07:12:57

'비정상의 정상화' 경상북도 최우선 추진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버린 비정상적인 관행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정상화 개혁이 시동을 걸고 있다. 경상북도가 전국 처음으로 이달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버린 비정상적인 관행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정상화 개혁이 시동을 걸고 있다. 경상북도가 전국 처음으로 이달 '비정상의 정상화 추진협의회'를 발족하는 등 향후 도정(道政) 최우선 과제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뤄나가기로 했다. 경상북도 제공

"피서철 휴가지에서는 바가지요금이 당연한 것인가요?"

"건물 비상구를 '생명의 문'이라고 합니다. 비상시 유일한 대피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적지 않는 수의 건물 비상구에는 항상 물건이 쌓여 있습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이런 행위, 이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국가, 지자체 및 공기업들은 일정 비율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런 관행, 이제는 고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비정상적인 것이 여전히 정상적인 것으로 통용되는 사회. 반칙이 원칙을 앞서는 나라.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과거 우리 사회 곳곳의 비정상적인 관행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정상화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가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고 했다.

새마을운동 등 우리나라 근대화의 선봉 역할을 했던 경상북도도 전국 처음으로 이달 '비정상의 정상화 추진협의회'를 발족, 향후 도정(道政) 최우선 과제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뤄나가기로 했다. 주민생활과 가장 밀접한 비정상적 관행들부터 반드시 바로잡아 주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것들, 얼마나 많을까?

"제가 사는 곳에서 토익시험을 치르려고 접수를 했지만 갑자기 서울에 취업이 되는 바람에 시험장소를 서울로 변경하려고 했습니다. 시험이 20일 이상 남았는데도 장소 변경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응시료의 60%라도 건지기 위해 취소 신청을 했습니다. 시험장소도 응시자 편의에 따라 바꿀 수 없는 약관은 정당한 공정거래 원칙에 어긋납니다. 고쳐주세요."

"사업상 해외 출장이 잦아 검사소 측에 자동차 정기검사를 기간 내에 받을 수 없으니 연기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검사소 측은 안 된다고 하면서 연체료를 물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행기 탑승권 등 소명 자료가 있으면 당연히 자동차 정기검사도 연기가 가능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국민 입장을 무시하고 행정편의만을 추구하는 비정상의 전형입니다."

"제조업 운영을 위해 공장을 경매로 낙찰받았습니다. 그런데 전 사업자가 전기요금을 미납해 전기공급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기 공급 재개를 위해 ▷미납 전기요금 완납 ▷낙찰잔금 완납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업 특성상 시간이 부족해 낙찰잔금 완납 이전에 전기요금을 선납하고 전기공급을 재개받아 공장을 돌려야 한다고 사정했지만 규정상 안 된답니다. 낙찰잔금이 완납되는 20일을 기다리라고 얘기하지만 20일 동안 바이어 50여 명이 마냥 기다려주겠습니까? 전기요금을 내겠다는데도 서류상 소유권 이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은 공급자의 편의주의입니다."

박근혜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 국정과제를 내걸고 관련 홈페이지를 열자 짧은 기간 동안 400여 건의 국민 제안이 들어왔다.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상식에 맞지 않는 엉뚱한 제안도 있지만 직접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몹시 억울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을 내용들이 훨씬 더 많다.

◆경상북도, 우리 지역부터 바꿔보자

경북도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달 '비정상의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과제를 처음 도입한 중앙정부에 모든 것을 맡겨두기보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직접 주민들과 맞닥뜨리는 지방정부가 앞장서 비정상적인 것들을 골라내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북도는 공무원 입장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제도를 적용하는 것부터 탈피, 모든 제도를 주민들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기로 했다.

경북도가 농촌에서 발견한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민들이 일하는 터전과 사는 곳이 다른 경우다. 행정구역이 다른 곳에 일하는 곳과 사는 곳을 따로 두게 되면 농업'농촌 관련 지원금 보조 프로그램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경북도 조사 결과, 여태 이런 관행이 있었던 이유는 행정기관 공무원들의 편의주의 때문이었다. 농민이 자신의 주거 주소지에 보조금을 신청하면 그곳 공무원들은 "다른 자치단체에 사업장이 있어 보조금을 줄 경우, 추진상황 점검 및 시설'장비 사후관리에 어려움이 생긴다"며 사업장이 있는 곳으로 떠밀었다. 농민이 다시 사업장 주소지 행정기관으로 가 서류를 내밀면 그곳 공무원들은 "주소지에 세금납부, 농지원부 등이 등재되어 있어 관리에 어려움이 생기니 주소지로 가 신청하라"고 돌려보냈다.

경북도는 이런 사례와 관련, 농민 입장의 원칙을 세우기로 했다. 도내에 주소지를 둔 농업인(작목반, 영농조합법인 등)이 보조금 사업 등을 신청할 경우, 사업장이 있는 시'군(읍'면'동)에서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안전에 대한 전 국민적 각성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경북도는 가장 지켜지지 않는 안전원칙인 비상구 확보를 반드시 정착시키기로 했다. 경북도는 겉핥기식 단속에서 탈피, 백화점'대형마트 등에 대해 월 1회 이상, 화재위험이 높은 겨울철에는 월 2회 이상 불시단속을 하기로 했다. 또 비상구 관리를 규정대로 하지 않은 곳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엄정한 행정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경북도는 이와 함께 행정기관의 노력만으로는 개선이 어렵다고 보고 비상구 폐쇄 등 불법행위 신고포상센터 운영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주민운동'국민운동으로 자리 잡아야

경북도는 도청 등 행정기관 중심으로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가 우선 추진되지만 장기적으로 이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방 차원의 주민운동을 넘어 범국민적 개혁운동으로까지 번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북도는 이를 위해 민간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보고 지역 여론주도층 인사 100명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위원장 노석균 영남대 총장)도 만들었다.

주낙영 경북도지사 권한대행은 "비정상적인 관행과 고질적인 악습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민관이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며 "도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 도출이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노석균 자문위원회 위원장은 "고도성장으로 인해 발생한 비정상적인 관행을 없애기 위해 자문위원회가 적극 나서서 지역사회 전체의 정상화 분위기를 정착시키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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