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려도 슬픔은 옅어지지 않는다
영화를 본다는 건 지금 사치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온 국민은 세월호 실종자들의 죽음을 지켜보고만 있다. 자신의 책임을 손 놓아버린 선장을 비롯한 어른들, 수익에만 눈이 어두워 안전대비를 방관한 회사. 그 회사를 방조한 정부기관, 우왕좌왕하는 국가 재난대비 시스템,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며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언론, 이 총체적 난국에서 아이들이 죽어간다. 그걸 생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일은 오래도록 커다란 집단 상처로 남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하나의 장대하고 끔찍한 스펙터클이 되었다. 당분간은 극장에서 웃고 즐기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금 극장가에 걸려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영화 중 죽음을 다루고 있는 것이 많다. 생명의 계절 봄이 한창인 4월, 벚꽃이 지듯이 이달은 또한 죽음의 계절이기도 하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스케일 큰 액션영화다. '선 오브 갓'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다루고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80대 거대부호의 의문의 죽음 이후 그녀의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다룬다. '페이스 오브 러브'는 남편의 죽음으로 고통받던 중 남편과 똑같이 생긴 남자와 마주치며 새로운 사랑을 키워나가는 아내의 이야기다. '니드 포 스피드'는 카 레이스 사고로 친구를 잃고 복수를 다짐한 남자의 이야기다. 스페인 영화 '그랜드 피아노'는 스승의 그랜드 피아노를 마지막으로 연주하게 되는 기회를 얻은 천재 피아니스트가 죽음의 연주를 펼치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지난주 흥행 톱10에 랭크된 영화 중 무려 8편의 영화가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꽃이 피고 지는 4월은 이다지도 잔인한지. 대한민국 국민에게 2014년 4월은 더더욱 잔인한 달로 잊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영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흥행에 선전하고 있는 두 편의 한국영화 역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이미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만방에 떨치며 화제를 낳은 '한공주'는 지난주 좋은 흥행성적을 받아들었다. 이 영화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학생의 일상으로의 힘겨운 복귀를 다룬다. 못된 동네 남학생들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일 이후 늘 붙어다니던 죽마고우가 물에 빠진다. 공주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죽음의 그림자에 맞서기 위해 수영을 악착같이 배운다. 새로 시작한 생활 속에서도 늘 이전 사건의 흔적이 따라다니며 그녀를 괴롭게 하지만, 그녀는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공주의 재기 노력을 복돋워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며 어른들의 책임이다. 복수 이야기가 아닌 피해자 갱생의 몸부림을 담은 영화라는 점에서, 게다가 개인 내면의 요동을 뛰어난 영화언어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꼭 보시길 당부하는 작품이다.
이정호 감독의 '방황하는 칼날'은 아내가 암으로 사망한 후 중학생 딸을 데리고 살아가던 싱글대디 상현(정재영)에게 덮친 비극을 다룬다. 상현은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야근을 밥 먹듯 하지만 막 사춘기를 맞은 딸에게는 지극한 아빠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비행을 일삼는 못된 동네 아이들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다. 우연히 범인이 찍은 동영상을 보게 된 상현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기로 한다. 그는 피해자에서 살인사건 피의자로 탈바꿈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나머지 삶은 없다"는 담당 형사의 읊조림이 가슴을 친다. 주인공이 스너프 동영상을 불법으로 유포하며 미성년자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는 나쁜 어른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잔인할지언정 통쾌함을 안겨준다. 영화는 우리 사회가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길 열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성찰의 순간을 부여한다.
어른들의 탓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어른들은 각성해야 한다. 아이들아, 우리 모두 기다릴게.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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