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정부 경제 개입" 주장한 프리모 데 리베라

입력 2014-04-24 07:34:05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는 1903년 오늘 스페인의 독재자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0년대 알폰소 13세 임금의 치세에 독재 권력을 휘두른 아버지는 경제에 정부가 개입하고 국가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마드리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아들 프리모 데 리베라는 부친의 사상을 이었다. 좌익정당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될 경우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1933년 10월 '팔랑헤 에스파뇨라' 운동을 시작하고, 파시스트당인 팔랑헤당을 창설했다. 다소 막연하지만 열렬한 파시스트적 견해를 자신이 주관하는 정기간행물 'F. E.'(1934)와 '아리바'(1935)에 표명했다. 이 간행물들이 발행금지 당하자 곳곳에서 연설모임을 개최했고, 의회에서도 연설했다.

1935년 인민전선을 구성한 좌익정당들은 1936년 2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이 선거로 그는 의원직을 잃은 직후 체포됐다. 투옥 중에 쿠엥카 대표로 의원직에 재선되었지만 인민전선 정부는 그의 입후보 자격을 무효화했고, 당을 해산시켰다.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즉결재판에 따라 공화파 정부에 의해 처형당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정당은 그를 순교자로 받아들여 팔랑헤당과 다른 집단들을 통합, 국가주의자 운동을 형성했다. 그의 논문과 연설은 내란 이후 프랑코 국가주의자 집단의 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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