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켜지고 있다. 진도 앞바다에, 수백 명의 어린 생명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경기도 안산에, 대한민국 전역에 촛불이 켜지고 있다. 기적 생환을 바라는 애절한 기원의 촛불이 이제는 탄식과 체념을 넘어 슬픔과 분노를 담은 촛불로 바뀌어 가고 있다. 촛농은 우리들 마음속 눈물이 되어 흐르고 남은 초의 길이만큼 우리들의 기대도 희망도 짧아지고 사라지고 있다. 끝머리라도 보이던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뒤 우리들의 실낱같은 기대도 가라앉았다. 국민들의 희망도 물속으로 사라졌다.
5천만 국민 모두가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벌써 1주일이다. 언제까지 이럴지 기약도 없다. 물속에 어린 생명들을 남겨 두고서는 아무 짓도 할 수가 없다. 엄두도 나지 않는다. 모두가 죄인이고, 모두가 저 아이들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직도 원망스러운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실종자와 사망자의 가족들이 수백 명, 수천 명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하고 있는 그 현장에서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벌어졌다. 몇몇 고위 공직자들의 처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고 현장을 가보지 않아도 신문과 방송으로 비보를 접하면서 죄스러운 마음에, 허탈한 심정에 일손이 잡히지 않는 국민들이 수없이 많은데 어떻게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그것도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을 정도로 높다는 분들이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용서할 수도 없다.
한 외신은 본분을 망각하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을 '악마'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말도 나오지 않고 눈물도 더 흐르지 않는 실종자 가족들의 눈에는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심사를 확 뒤집어 놓는 그들, 무개념 고위 공직자들도 악마로 비쳤으리라. 그들의 낯두꺼움에, 무감각'무개념에 역겹기까지 하다. 그래도 상기해야 한다.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필요할 때마다 되새겨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 더 그렇다.
고위 공직자들의 기행은 '메들리'로 쏟아졌다. 최고위직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사고 당일인 지난 16일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의약품이 놓여 있던 테이블을 치우고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잡혔다. 바닥에 앉아 있는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였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거기서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한 장관이나 라면을 넙죽 갖다바친 공무원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뜨거운 라면 국물을 뒤집어써도 시원치 않았을 상황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서 장관 일행은 18일 학생 장례식장을 찾아간 자리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향해 '교육부 장관님이 오셨습니다'라는 고지도 했단다. 반응은 당연히 "그래서 어쩌라고?"였다고 한다. 멱살잡이를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수백 명의 생때같은 아이들이 물속에 잠겨 있는 상황에서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폼내고 광내고 이름 낼 생각만 한 것일까.
송영철 전 안전행정부 국장도 그 대열에 선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일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 상황본부의 사망자 명단 앞에서 동행한 공무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실종자 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송 전 국장은 이와 관련해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으나 정부는 그의 사표를 즉각 수리하고 해임 조치했다. 부글부글 끓는 민심을 감지한 때문이었다. 보는 사람이나 듣는 이들이 적었다면 적당하게 넘어갔으리라.
사고수습을 하고 대책을 내놓는 정부의 무능과 무질서에도 억장이 무너지는 실종자 가족들은 고위공직자들의 낯뜨거운 언행에 할 말을 잃는다. 청와대를 찾아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실종자 구조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이른 새벽 도보로 귀경길에 오르겠다며 나선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남는다. 총리 면담을 약속받고 해산했다는 이들이 오히려 이성적이다. 고위 공직자보다 더 의연한 국민이다.
어느 누구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화를 낼 가치조차 없다고 한다. 어디 한 두 번이라야 그럴 가치라도 있지라는 말도 한다. 하지만 말이다. 마냥 체념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때같은 어린 생명들을 물속에 빠뜨린 것도 모자라 또 다른 우리 자식들을 그런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는 없어서 하는 말이다.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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