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적성 맞춤형 탐구·토론 수업 '고교서 배우는 대학교육'

입력 2014-04-22 07:47:43

방과후 학교 새 모델

사회가 변화하고 대학입시 제도가 달라지면서 고교 교육 프로그램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대구경북 고교 상당수는 여전히 과거에 안주하고 있다. 반면 대구 포산고(사진 윗쪽)와 구미 현일고(사진 아래)처럼 변화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곳도 있다. 포산고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대폭 손질, 진로
사회가 변화하고 대학입시 제도가 달라지면서 고교 교육 프로그램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대구경북 고교 상당수는 여전히 과거에 안주하고 있다. 반면 대구 포산고(사진 윗쪽)와 구미 현일고(사진 아래)처럼 변화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곳도 있다. 포산고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대폭 손질, 진로'전공 맞춤형 과정을 도입한 가운데 응용수학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 모습.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정시모집보다는 수시모집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최근 대학입시의 흐름이다. 수시모집에서 대학들은 각 고교의 정규 교육과정뿐 아니라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내용에도 주목한다. 일반고 경우 다양한 성적대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기 때문에 정규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진로에 맞춘 프로그램을 편성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 대구 고교들의 방과후학교는 여전히 수능시험 대비 위주다. 논술 수업을 일부 끼워 넣는 것 외에는 정규 수업 시간에 배운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교과 내용을 복습하거나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배우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상당수다. 변화 추세를 따라잡으려는 교육청의 움직임도 굼뜨다. 경북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일부 고교가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일반고인 대구 포산고등학교와 구미 현일고등학교가 변화의 선두에 있는 곳. 이들 고교는 학생 수준과 요구에 맞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구현하기 위해 교사 의견을 수렴하고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까지 받았다. 두 고교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운영 사례를 소개한다.

◆'진로에 맞춘 수업을 하자', 포산고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18일 오후 7시 40분쯤 찾은 대구 포산고 한 교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1, 2학년 10명이 모여 외부 강사 정성옥 씨가 진행하는 '임상심리Ⅰ'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 과목은 대학 교양 과정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으로 특목고, 자사고와 달리 일반고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수업. 포산고는 일반고임에도 강의 수준을 고교생 눈높이에 맞춰 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정 씨가 현재 마음 상태를 그려보라고 주문한 뒤 학생들이 그린 그림은 찌그러진 하트, 별 등 제각각이었다. 그리고는 말로 그림을 설명했다. "행복하지만 우울할 때가 있다" "공허하다" "심란하다" 등 학생들의 이야기는 다양했다. 이후 정 씨는 "마음을 그림과 말로는 설명할 수 있는데 과학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한 번 살펴보자"며 심리학의 발전 단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포산고는 올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대폭 손질했다. 기존의 수능시험 대비 수업에서 벗어나 정규 교육과정과 연계한 심화과목 수업, 학생들이 관심 있는 전공 관련 수업으로 구성한 '포산 인재 양성 프로그램'(PES'Posan Excellent Student Program)을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학생들이 정규 수업 시간에 배운 교과 지식을 어떻게 확장시키는지 익혀 학습의 깊이를 더하는 한편 자신이 장래에 전공하려는 학문을 미리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수강 학년 제한을 두지 않는 무학년제 수업이 다수이고 수업 방식도 대부분 주제 탐구형, 토론형이다.

국제정치, 사회과학방법론, 문장론, 생명과학Ⅱ 등이 정규 교육과정과 연계한 심화과목 수업.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정규 수업 시간에 개설할 수 있는 과목이지만 학생별 진로와 수준 차이를 고려해 방과후에 진행하는 것이다. 임상심리, 응용수학 등 전공 관련 수업은 전공 선택을 앞둔 1, 2학년 학생들에게 인기다.

국제정치 수업을 듣는 임세준(3학년) 학생은 "한 번에 3시간 수업을 하는데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며 "한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사건의 배경까지 다뤄보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 얼른 대학에 가서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고 했다. 사회과학방법론 수업에 참여한 권세승(3학년) 학생은 "대학에 가면 아동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 수업을 재미있게 들으면서 그 생각이 더 굳어졌다"고 했다.

포산고는 이처럼 학생들의 능력과 특성에 맞는 강의를 제공,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변화하는 대학입시에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산고 김호경 교장은 "진로 맞춤형 방과후학교 수업을 들으며 학생들은 자신이 평소 배우는 교과가 진로나 전공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이해하게 돼 정규 수업 집중도도 확연히 높아졌다"고 했다.

◆'다양한 경험으로 학력, 창의성 모두 잡는다', 구미 현일고 사례

"공교육도 학생의 다양한 학습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해야죠. 학생들이 좀 더 폭넓은 사회'과학적 경험을 하고 소양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다양한 전공, 적성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학력 향상뿐 아니라 지적'정서적으로도 한층 성숙해질 것이라고 기대한 겁니다."

구미 현일고 장창용 교장이 올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특색 있게 꾸민 이유다.

현일고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도 여느 고교처럼 수능시험 대비 강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위권 이하 학생들을 위해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성적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수능시험 대비에만 매달리는 다수 일반고 경우와 다르다. 이곳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정규 교육과정과 연계한 심화과목 수업이 중심이다. '현일 드림 업 아카데미'(Hyunil Dream Up Academy)라 부르는 과정이 그것이다.

현일고 경우 대구 다수 고교처럼 정규 수업 때보다 좀 더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수능시험에 대비하는 심화학습을 진행하는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다. 정규 수업 때 배운 과목 중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대학 교양 수준에 버금가는 심화과목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국제경영, 국제정치 등은 인문계열 학생을 위한 과정. 자연계열 학생을 위해서는 응용화학, 응용생물 등의 심화과목을 개설했다.

수업 방식도 일반적인 수업과 다르다. 학생이 주도하는 것이 현일고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의 또 다른 특징이다. 석사나 박사 학위를 가진 강사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설명을 해주면 학생들은 이 가운데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해 매시간 직접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이다.

현일고 류인식 교무부장은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학생들은 관심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게 되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여 정리하면 자신만의 연구 보고서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고 대입 수시모집 때 치러지는 전공 관련 구술 면접에 대비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학생들의 호응도 좋다. 주입식, 암기 위주 수업이 아니라 강사, 다른 학생과 소통하면서 흥미 있는 주제, 자신의 진로에 맞춘 내용을 다뤄본다는 데 만족하고 있다.

국제경영 수업을 듣는다는 김채영(2학년) 학생은 "경영학이 사업 계획, 조직 운영 등 많은 분야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더욱 흥미가 생겼고 경영학자가 되고 싶은 열망도 커졌다"고 했다. 같은 수업을 듣는 권진경(2학년) 학생은 "다양한 사례와 시각 자료를 이용해 수업을 하니 훨씬 쉽게 이해가 된다"며 "우리가 직접 주제를 정하고 강사 선생님과 함께 연구 보고서를 만들어보는 것도 흥미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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