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음모론

입력 2014-04-21 11:15:03

1924년 집권한 영국 최초의 노동당 정부는 1년도 안 돼 총선에서 참패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선거를 나흘 앞두고 '데일리 메일'에 보도된 소련 국제부장 그레고리 지노비예프의 편지였다. 영국에서 공산주의 선동을 강화하라며 영국 공산당에 보낸 이 편지는 노동당에 치명타였다. 집권 직후 소련을 승인한 노동당 내각의 '색깔'과 '목표'를 영국 국민은 한껏 의심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이후 좌파를 중심으로 이 편지는 노동당 내각을 붕괴시키기 위한 정보기관의 음모였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1999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의 조사 결과 그런 음모는 없었다. 문제의 편지는 소련에 적대적이었던 백계(白系) 러시아인들이 영국과 소련 간의 협정을 무산시키기 위해 위조한 것이었다. 이후 이 편지는 MI5에 전달됐고 일부 요원들이 데일리 메일에 누출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MI5의 '집단적' 음모는 아니었다.

조사의 결론은 정보국의 고위 인사들이 이 편지를 위조하고 유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음모가 성공하려면 정보국 내에 '공모와 통제'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리고 노동당이 패한 것은 편지가 아니라 당시 힘을 잃어가던 자유당에 의존한 때문이었다. 실제로 선거가 있었던 1924년 10월에 노동당 지지표는 늘어나 있었다.

이는 '음모론'의 허구를 잘 보여준다. 음모론이 성공하려면 음모에 가담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사상적으로 동일체여야 함은 물론 비밀 엄수를 위해 잘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매우 어렵다. 닉슨 대통령이 자신의 유죄를 입증하는 녹음테이프 몇 개조차 없앨 수 없었던 사실은 대표적인 실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모는 음모를 꾸민 자들을 더욱 큰 실패로 몰아가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도 음모론은 난센스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정부와 국정원의 음모'라는 괴담이 바로 그렇다. 정부와 국정원이 세월호 침몰을 기획했다면 거기에 가담한 모든 사람의 입을 봉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이번 참사로 정부는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다. 괴담의 주장대로 '남재준 사건을 망각 속으로 넣는' 것은 성공했지만 그보다 더 큰 '손해'를 본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헛소리 아닌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