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차마 볼 수가 없다고들 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소리가 잠겨서 더는 못 보겠다고도 한다. 지난 며칠간은 그랬다. 이제는 얼마나 이 정부가 헛발질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TV를 본다. 울화가 치민다. 처음에는 욕이 나오다 이제는 입이 아프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게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렇게 떠들어댔던 국격(國格)은 말이 아니다. 처참하게 훼손됐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평소 실력이며 본 모습이다. 일류도 이류도 아닌 한참 처지는 삼류임을 만천하에 확인시켰다.
반면 일류로 기록될 만한 것은 생중계 기술이었다. 세월호가 기울어진 순간부터 침몰까지 현장 화면은 줄곧 실시간으로 방송을 탔다. 당연히 해외토픽이 됐다. 승객과 화물을 실으면 1만t에 가까운 대형선박이 거짓말처럼 바다 한중간에서 쓰러지고 옆으로 기울었다가 침몰하는 몇 시간에 걸친 장면이 전국을 넘어 전 세계로 생중계된 것이다. 생중계 기술은 '대~한민국'다웠다. 국민들도 그날 아침 처음에는 마음을 졸이며 보았다. 전원 구조라는 '낭보'를 듣고는 기적의 생환드라마를 보는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탑승자 가족들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환호성을 지르다 탄식했다. 망연자실은 분노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사고 현장에서 보내오는 이 생중계 장면은 300명이 넘는 승객들이 배 속에 갇혀 있다가 그대로 '수장'되는 역사기록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기네스북감이다. 엿새 동안 마구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생중계라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TV만 틀면 나오는 뉴스특보와 특집방송은 대한민국 전체를 초상집으로, 대한민국 국민 전부를 상주로 만들어 버렸다.
전 세계 주요 국가 정상들은 위로 전문을 보내오고 있다. 위로의 뜻과 함께 구조를 돕겠다는 뜻도 전해왔다. 하지만 위로가 위로로 들리지 않는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조롱으로도 들린다. 고마움이 부끄러움으로 변한다. 부실과 과속으로 뭉쳐진 고속질주에 대한 시기가 없을 리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내 심사가 뒤틀린 탓인가, 아니면 자격지심 탓일까? 또한 참사가 연중행사처럼 반복되는 나라를 보면서 가졌던 마음을 떠올려본다. "저러니 나라가 저 모양이고, 저러니 국민들의 목숨이 파리목숨이지."
필부(匹夫)의 생각이 이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가졌을 참담함은 측량이 어렵지 않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을 것 같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신문은 '한국의 생활수준은 선진국에 가깝지만 대처 모습은 현대화의 취약성을 보여준 거울'이라고 꼬집었다. 낯이 화끈거린다.
문제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것이다. 망발이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현실이 그렇다. 체계가 없고 계통도 없고 질서도 없는 우왕좌왕 식은 고쳐지지 않는 불치병 같다. "이게 무슨 정부냐?"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높은 사람들일수록 도움이 안 되는 현상도 재현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다 급기야 청와대로 대통령에게 항의하러 가겠다고 나서고 경찰이 이를 막아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히려 오래 참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부가 어떤 정부인가? 멀쩡하던 '행정안전부'라는 이름을 안전을 강화한다며 '안전행정부'로 바꾼 정부다. 물론 안전이 강화된 건 아니다. 해양 관련 업무를 일원화한다며 해양수산부를 부활시킨 것도 이 정부다. 해양 관련 업무가 체계화된 것도 아니다. 이름이 아깝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일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 안에는 아직 200명이 훨씬 넘는 어린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옛말에 부모가 죽으면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으로 천붕(天崩)이라고 했다. 자식이 죽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과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부모는 땅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저 물속의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더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집 밖에 나가서는 어른들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나?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단언컨대 삼류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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