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정체성 살리고 시민 공동체 만드는 '공공디자인의 힘'
'대구근대역사골목'이 2012년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99곳 중 제1곳으로 선정되었다. 대구를 대표하는 명소로서 유일하게 선정된 것이다. 골목이 주는 역사적 의미에 재미를 더해 이곳은 이제 학생들의 수학여행 장소이자 외국인들이 관광 1순위로 방문하는 한국 제1의 볼거리가 된 것이다. 특정 건물이나 장소가 아닌 길이 600m 정도밖에 안 되는 골목길이 어떻게 이처럼 유명하게 되었을까?
대구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 근대에서 6'25 직후까지의 문화와 유형자산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러한 유형의 유산들은 동, 서, 남, 북, 4성로를 중심으로 읍성 내부와 그 인접부에 위치하며 골목과 연계해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곳은 이상화, 이육사, 박목월, 현제명, 이인성, 이중섭 등의 예술인들이 태어나 살았던 곳이며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서상돈, 김광제, 기생 앵무 등의 역사적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이다.
최근에 들어 근대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도시를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공공디자인의 개념이 나타나게 되었다. 의상이나 건축, 작품에 나타나던 디자인이란 개념이 드디어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은 우리의 삶의 질이 확장된 때문이 아닐까. 이를 통해 도시는 재생 및 정체성 찾기로 그 패러다임이 변화할 수 있었고 역사문화도시로서의 대구의 위상도 한층 높아진 계기가 된 것이다. '근대골목'을 탄생케 한 의미 있는 공공디자인, 그 명품사업의 특성과 의미는 무엇일까.
◆공공디자인이 발견한 아름다운 골목
2007년 대구 중구청과 대구시 그리고 대구를 사랑하는 뜻있는 사람들과 설계전문가들이 처음으로 이 길을 디자인하게 된 계기는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의 생가가 아파트 건설로 철거 직전에 이르렀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뜻있는 일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상화 고택과 함께 인접한 국채보상운동의 주역인 서상돈 고택의 보존을 주장하면서 시민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더하여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막 시작한 공공디자인 시범사업 정책이 맞물리면서 두 고택을 포함해 동산정원부터 약전골목까지의 길을 대구지역의 시범사업으로 정한 계획안이 심사에 선정되었다. 이후 디자인을 위한 쌈짓돈이 준비되었고, 건설회사의 협조 등으로 이 사업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 사업은 공공디자인이 어느 한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듯, 상화 고택의 보존에 대한 선거공약이나 시민운동 의식에 남다른 단체장의 뜻이 적극 반영된 것은 물론, 당시 대구지역이 타 지역보다 우선 시범지역이 된 데는 직전에 대구에서 전국 최초로 시작한 삼덕동 담장허물기사업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라 하겠다.
이렇게 절묘한 시점에 시작된 공공디자인 시범사업이었지만 여태까지와 다른 새로운 시도였기에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업의 핵심 사안은 이전까지 관 주도의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공공디자인사업의 개념에 맞는 주민참여 방식으로 방향을 택한 점이었고, 관련 지역 주민대표와 공무원, 그리고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팀 작업 방식을 처음으로 시도하였던 점이다.
누구에게나 골목은 어릴 적의 추억과 이웃 간의 잊지 못할 정이 담긴 곳이며 현대에 점점 잊혀가는 인간성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살려 주는 추억의 장소이다. 특히 대구의 근대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이 골목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강조한 인간적인 호소가 지역 원로들은 물론 주민들의 감성을 움직였고 이 소중한 자산을 시대에 맞게 가꾸어야 할 공동의 마당임을 역설하면서 이 사업은 진행되었다. 물론 이후에 지역의 잠재된 가치를 재발견하고 공감하며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경계를 허무니 우리라는 공동체가 되었다
건축가나 도시계획가의 역할은 설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말하듯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개개의 다른 소리들을 하나의 조화로운 음악으로 만들듯이, 공공디자인 사업 역시 개개인 혹은 단체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들은 후 조화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 마스터플랜을 수립하여 하모니를 이루는 일이었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두 쉽지 않았으나 끊임없는 설명과 조율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계획에 반영하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점이라면 담장을 허물어 경계를 없앤 것이다.
경계 허물기는 너와 나를 우리로 소통케 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였다. 옛길을 막고 있던 장애였던 담장들을 허물자 모든 골목은 일순 환한 꽃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동산병원 정원과 제일교회 사이에 쳐진 담장을 허물어 선교사 주택과 하나의 정원을 이룬 점, 90계단의 꿈같은 길, 매일신문사와 인접한 계산 성당의 담을 허물어 기도하듯 나무를 심은 뜻, 특히 서상돈 고택과 마주 보는 상화 고택의 마당은 어느 곳에서든 골목길로의 진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 마당이야말로 골목의 핵심 오픈 스페이스로서 전체 마스터플랜에서 매우 중요한 항목이었는데 그 예상은 적중하여 지금 이 마당에선 다양한 프로그램이 공연되고 전시되며 주민들은 물론 방문객 상호 간의 만남과 대화의 장으로써 하나의 소광장이 되고 있다. 한번 나가 보시라. 주말마다 거리연극이 열리고 열린 음악회, 시낭송 등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되어 우리는 도심 한가운데서 잃었던 정서와 감성을 회복하며 어느덧 사람 사이에서 소통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사업의 마지막 구간은 YMCA의 전신인 교남 YMCA 건물과 대구 병원 건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이해영내과병원(현재 한방체험관 공사 중)을 지나 문화재로 지정된 아름다운 구 제일교회가 있는 남성로, 약전골목과 만나면서 일단 끝이 났다. 이 골목 사업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고민한 것은 100년 전의 근대 이미지를 어떻게 현대에 맞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는데, 고증을 통하고 전통을 기억하며 옛날 느낌의 소재를 사용하고 사진을 전시한 이런 신중한 디자인 과정 때문이었다.
글=이정호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사진=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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