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만 더 커질라…빛바랜 '선행규제 특별법'

입력 2014-04-10 09:45:12

공교육 정상화 입법예고 어기는 대학은 정원 감축, 사교육 팽창 역효과 우려

교육부가 10일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교육계에선 이 법안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시행령안에 따르면 대학별 고사에서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 시정 명령을 받고도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해당 대학은 입학 정원의 10% 내에서 모집이 정지되고 1년간 정부 재정 지원 사업에 참가 신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두 차례 불이행하면 입학 정원의 10% 내에서 정원이 감축되고 재정 지원 사업 참가 신청 제한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난다. 입학 정원이 줄고 정부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면 대학을 운영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교육부는 또 ▷국제중학교 등 특성화 중학교 ▷외국어고'국제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 ▷자율형사립고 ▷자율형공립고 ▷전국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자율학교 ▷비평준화 지역에서 선발고사를 시행하는 고교 등은 이전 단계 교육과정 내에서 입학전형을 실시하도록 했다. 이들 학교는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 뒤 입학전형에 선행교육을 유발하는 내용이 포함됐는지를 평가하는 보고서와 함께 이를 다음 연도 입학전형에 어떻게 반영할지 해당 지역 교육감에게 알려야 한다.

이에 따라 특목고, 자사고 등은 면접을 비롯한 입학전형 과정에서 중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으로 평가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고교 교육과정을 다루는 캠프, 프로젝트 활동 참가 이력도 입학전형에 반영하지 못한다. 가령 외국어고가 방학 기간 중학생을 대상으로 고교 수업 내용을 익히는 캠프를 개최한 뒤 입학전형 때 이 캠프 수료자를 우대하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이 시행령안은 다음 달 20일까지 입법예고된 뒤 규제심사와 법제심사 등을 거쳐 최종 확정, 9월 12일 제정'공포될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능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고3 경우 학기당 이수 과목과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는 등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편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선행교육에 대한 판단 기준 등 구체적인 해석과 사례를 담은 '실행 매뉴얼'을 마련해 8월 말까지 학교 현장에 보급할 것"이라며 "이 법안이 학교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되도록 권역별 설명회와 교원 대상 연수 등을 통해 충분히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이 교육부의 기대대로 선행교육을 줄이고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9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에 따르면 초'중'고 교원 20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사교육비 부담이 줄 것이라는 응답이 51.24%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교육비 부담이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도 48.26%나 됐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정작 교육 환경 개선 등 공교육 정상화를 지원하는 내용이 없는 데다 학원은 제외한 채 학교만 선행교육을 규제해 공교육이 더 약화하고 사교육이 팽창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며 "지나치게 어렵게 편성된 교육과정을 서둘러 개편하고 대입제도를 개혁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을 없애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특목고, 자사고와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차별적으로 운영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학원에 대한 규제도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선행교육을 한다는 광고를 금지한다는 것 외에는 학원 규제 방안이 없다"며 "특목고, 자사고는 교육과정 편성이 자유로워 일반고 입장에선 '선행'으로 비칠 내용을 교육할 길이 열려 있는 게 현실이어서 이들 학교에 가려는 학생들은 앞으로도 학원에서 선행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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