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부끄러운 기억

입력 2014-04-09 07:26:10

얼마 전, 스마트폰 고등학교 동창 애플리케이션 '밴드'에 결혼 청첩을 찍은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아는 이름이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신부 아버지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누굴까? 게시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사진은 1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의 딸 결혼 청첩이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혼주의 이름에도 지워졌구나' 란 생각이 들자 순간 가슴이 먹먹해 왔다.

대구의 모 고교 교사였던 친구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요즘 나이로 보면 요절이나 다름없는 친구의 부음을 듣고 많은 동창이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오열하던 여고생 딸과 밤새 짐승처럼 울부짖던 노모를 보면서, 죽음이 그렇게 슬픈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좀체 상가(喪家)에서는 밤을 새우지 않는 나였지만 그날만은 한숨도 자지 않고 빈소를 지켰다. 그 친구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고교 2학년 때, 우리는 설악산으로 여행을 갔다. 그 시절 수학여행 여관방에서는 으레 일탈이 벌어지게 마련이었다. 그 중심에는 음주가무(飮酒歌舞)가 있었다. 노래와 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느냐만 문제는 음주였다. 모두 처음 마시는 술이 하필이면 그 독하다는 강원도 경월소주였다. '깡식이'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몇 번이나 끝내라며 경고했지만 판은 걷히지 않았다.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깡식이' 선생님이 최후통첩을 했다. 그런데 상태가 안 좋아진 학생 하나가 대꾸를 했다. "법대로 해뿌라!" 그 말을 들은 깡식이 선생님, 별명에 괜히 '깡'자가 붙지 않았다는 것을 마치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언놈이야? 빨리 나와!"라며 고함을 질렀다. 그 서슬에 방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깡식이 선생님은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한 학생이 대신 나가 귀싸대기를 몇 대 맞는 걸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학생이 10여 년 전에 세상을 등진 친구였고, 술 먹고 객기를 부린 학생은 바로 나였다.

비겁하고 부끄러운 그 일은 나로 하여금 진정한 용기를 일깨우게 해 주었다. 군대시절에는 선량한 후임들을 괴롭히던 악질 선임에게 하극상을 일으켰다가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생전에 그 일을 이야기하면 '맞은 기억이 없는데?'라며 빙긋이 웃던 모습이 선하다. 그의 귀한 딸이 장성하여 혼례를 치른 것이다. 그날은 바빠 꽃만 보내고 후일 따로 동창들과 모임을 가져 유족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이 이뤄질 볕 좋은 5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가 기다려진다.

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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