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1차 천안문 사건 유혈진압 마오쩌둥

입력 2014-04-05 07:24:59

중국이 러시아를 대신해 미국과 세계 2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만 미국을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초일류 국가가 되기 어려운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가 집회 표현 결사의 자유 억압. 중국은 반체제 운동과 소수민족의 사소한 움직임조차 철저히 감시한다.

2차대전 이후 중국에서 일어난 대표적 민중 저항운동이 천안문 사건. 천안문 사건은 1976년 오늘 일어난 1차와 1989년 6월 4일 일어난 2차로 분류된다.

1차 천안문 사건은 중국 인민들의 존경을 받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그 해 1월 사망하자 추모집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저우 총리가 사망한 이후 극좌 조류가 지배하자 중국 인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천안문 광장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이 내건 플래카드에는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靑) 등 이른바 극좌 4인방(四人幇)을 규탄하는 글들이 대거 내걸렸다. 이날 시위는 공안당국과 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됐고, 당시 마오쩌둥에 맞설 실력자였던 덩샤오핑은 책임 추궁을 당해 실각했다. 하늘을 찌를 듯 위세를 떨치던 마오쩌둥은 그 해 9월 사망했고, 밀려났던 덩샤오핑이 2년 뒤 집권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평가는 뒤집혀졌지만 중국은 이 시기만 되면 초긴장 상태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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