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분도가 개관 10주년을 맞아 동양화가 김호득 개인전을 마련했다.
다음 달 1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김 작가의 신작 및 대표작 30여 점이 소개된다. 신작 가운데 상당수가 미공개 작품이어서 전통 파괴를 통해 한국화의 정형성을 깨뜨리는 김 작가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전시로 주목받고 있다.
김 작가는 한국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실험적인 작품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있다. 수묵의 현대적 해석에서 시작된 그의 실험은 장르와 형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진행되는 까닭에 동양화와 서양화, 구상과 비구상, 평면과 입체와 같은 근대적인 구분을 한꺼번에 없앤다. 특히 다양한 표현기법과 매체가 동원되지만 임기응변처럼 설익게 행하는 작업이 아니라 정제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탐구 정신에 대해 그는 "한 가지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한계에 도달한다.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된다. 새로운 작업을 할 때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에너지를 솟게 만드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새로운 것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업실에서 수없는 반복과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탄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반영하듯 김 작가는 오랫동안 천착해 온 '흔들림-문득'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지난해부터 '겹-사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전시 주제도 '겹-사이'다. '겹-사이'는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겹-사이'는 장르들의 사이, 인위적인 요소와 자연적인 환경의 사이, 흰 것과 검은 것의 사이, 밝음과 어두움의 사이, 작가와 관객의 사이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나아가 동양과 서양의 사이 개념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그의 작품은 이미 동서양의 융합으로 나아가고 있어 동양과 서양의 사이 개념을 붙이기에 무리가 없다.
이번 개인전은 1~3층까지 갤러리분도 전체 전시장을 이용한 대규모 전시로 층마다 공간의 특수성을 살린 주제를 갖고 있어 구성적인 측면에서도 완성도가 높다. 1층 전시장은 김 작가를 가장 보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붓으로 그은 획을 통해 문자와 자연이 갖는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김 작가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들이다.
2층과 3층 전시 공간에서는 기존 개념을 확장'변화시킨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2층에는 캔버스 아크릴 작업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3층 전시실에는 한지 설치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2층과 3층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들은 서로 보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2층 작품들은 서양 재료를 사용해 동양 정신을 표현했다. 한지 대신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을 두껍게 묻힌 작품은 한국 회화의 유력한 경향으로 정착한 단색화의 일종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3층 작품들은 동양 재료를 통해 서양의 물질을 드러냈다. 한지를 여러 겹으로 포개어 놓은 대형 설치조형물과 먹색으로 칠한 종이를 벽에 촘촘히 설치한 드로잉 작업, 흑과 백으로 구분된 한지 문틀로 제작한 설치작 등은 평면작과 구별되는 입체적인 조형성을 띠고 있다.
2층과 3층 전시장을 수놓은 작품들을 통해 김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동서양의 융합이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정신과 물질이다. 이 둘의 차이를 극복하고 조화시키는 것은 미술계의 화두"라고 말했다.
그동안 김 작가는 전시를 열 때마다 새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이것은 김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전시에서 선보인 실험적인 시도가 다음 전시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패턴은 그의 작업이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심적인 위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김 작가의 다음 전시를 엿볼 수 있는 단초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도 남다르다. 김 작가는 "예술가로 기념비적인 설치 작품 5개 정도는 남기고 싶다. 또 영상작가와 협업을 통해 영상 작품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053)426-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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