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봄바람

입력 2014-04-03 13:46:00

하루에도 몇 번씩 '추운 건 정말 싫어'란 말을 입 밖으로 꺼내게 만들던 긴 겨울이 끝나고, 이젠 정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하늘에선 눈송이 대신 따뜻한 봄비가 내리고, 그 덕에 겨우내 얼어있던 땅들이 녹으며 흙냄새를 풀풀 풍긴다. 이 모든 봄 모습들을 보며 반가움과 두근거림으로 마음이 들뜬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집 두 털뭉치들 역시 마음 전체가 '봄바람'으로 휩싸인 듯하다. 그리고 그 봄바람으로 인해 늘 집 안에서 바깥을 쳐다보기만 하던 녀석들이 요즘 들어 자꾸 탈출을 시도한다.

사실, 애초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나였다. 이사 올 땐 분명 '밖으론 한 발자국도 내밀지 못하게 해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밖으로 자주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종종 문 닫는 것을 까먹었다. 그렇게 열린 문을 통해 호기심 가득 찬 우리 집 고양이들이 한발 두발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또 그때마다 조심조심 밖을 기웃대는 녀석들이 신기하고도 재밌어서 말리지 않고 묵인한 결과 요즘은 자주 문 밖으로 탈주한다. 현관 문 밖이 바로 바깥은 아닌지라 처음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와 보기 좋게 데크(deck)에 드러눕는 체셔의 동선은 크지 않았고, 앨리샤는 왕창 겁을 집어먹고 현관 안에서 밖을 지켜보다가 몇 발자국도 못가서 돌아들어오는 것을 반복했기에, 그저 겁쟁이라며 피식 웃고 마는데서 그치곤 했다.

봄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지금, 여전히 체셔는 데크에 나가 그늘진 곳에 몸을 뉘고 졸거나, 새와 나비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앨리샤는 달라졌다. 예전과 달리 대담한 탈주를 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녀석은 현관문이고, 발코니 문이고 우리가 문을 열 때만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문을 여는 즉시 폴짝 뛰어서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리고는 데크 위를 잠깐 어슬렁거리는 듯이 보이다가 곧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한 번은 천연덕스럽게 보리 집 지붕 위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데크 아래 자갈이 깔린 땅바닥에서, 그리고 그다음은 집 뒤에 있는 보일러실에서 발견된 앨리샤는 발견 즉시 또 뛰어가기 바빴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가서는 잡혀서 집으로 들어가기 싫다는 의사를 피력하며 자기 나름대로는 숨어보겠다고 주차 된 차 아래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간식봉지를 흔들며 꾀지 않는 이상 좀처럼 집안으로 돌아올 기색을 보이지 않는 앨리샤 때문에 요즘 꽤나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나, 구름 낀 날이 아닌, 바로 화창한 하늘에 햇살이 가득한 날에만 나가고 싶다고 칭얼대는 체셔와 앨리샤를 보면 녀석들도 분명 '밖에 나가기 좋은 날'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날엔 나 역시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썩이기 때문에 나오고 싶어 하는 녀석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긴 한다. 그럴 때마다 못이기는 척 함께 데크 위로 나서곤 하지만 한편으론 자칫 멀리 나가서 길을 잃을까봐, 그리고 우리가 찾지 못하게 되어 버릴까봐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누구의 마음에나 살랑거리며 찾아오는 따뜻한 봄바람이니만큼 억지로 막거나 못나가게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딱 데크 위에 나란히 앉아서 '봄 풍경을 감상할 정도까지만' 이다. 그 이상의 불필요한 호기심은 앨리샤의 마음속에서 잦아들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의 지나친 노파심일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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