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는 자가 바다 주인"
단지 쌀밥을 먹기 위해 배를 탔던 소년, 차비가 없어 노점을 하던 소년은 40여 년 뒤 경북 동해안 지역 최다 어선을 보유한 선주가 된다. 포항시 구룡포읍 김재환(58) 씨의 이야기다. 김 씨는 현재 종업원 100여 명, 순수익 15억원의 중견 수산업체인 주영수산의 대표이다.
"사람과 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상대를 믿는 만큼 상대도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이죠."
김 씨가 15살일 때 돛풍배(돛으로 운항하는 어선)를 몰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조선소에 취업했다. 당시 어선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진 탓에 목수일과 같았다. 7년간 나무와 씨름하며 배를 만들었다. 그러나 22살이 될 무렵 구룡포에 강선(철선)이 들어오면서 그간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좌절한 그는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오징어잡이배를 탔다. 항상 배고팠기에 '쌀밥이라도 실컷 먹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어선 일이 워낙 힘든 탓에 배에서는 항상 쌀밥을 줬지요. 당시에는 그게 제일 부러웠어요."
미친 듯이 일만 하던 나날이었다. 선박요리사인 '화장'으로 시작해 뱃일을 배우기 위해 온갖 막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다. 결국 김 씨는 6년 뒤인 28살에 선장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했다. 당시 선장은 최소 30대 중반부터 임명되던 것이 관례였다.
1992년 3천만원을 모은 김 씨는 고생을 그만 하고 횟집이나 해볼까 하는 안이한 생각도 했다. 그의 아내는 '지금 손에 물을 묻히면 평생 식당주인이 고작'이라고 일침했다. 그래서 자신의 첫 어선인 78t 규모 오징어잡이배를 샀는데 4억8천만원의 고가였다.
이전 선주는 그를 믿고 '나머지는 벌어서 갚으라'며 흔쾌히 배를 넘겼다.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은 김 씨는 현재 대형어선(29t 이상) 9척, 소형어선(29t 미만) 2척 외에 냉동공장(4천297㎡), 조선소까지 소유한 건실한 CEO이다. 한편으로는 어릴 적 배고픔을 잊지 않고 불우이웃을 위해 매년 5천만원을 기부하는 독지가이다.
"바다는 주인이 없습니다. 무한한 자원의 보물창고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신뢰를 쌓는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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