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노역 5억 vs 온 종일 폐지줍고 5천원…'일그러진 대한민국'

입력 2014-03-27 10:18:26

폐지 값 반토막에 노인들 더 힘든 삶…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폐지를 줍는 서민들이 폐지 값 하락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 동구 한 고물상에서 김모(오른쪽) 할머니가 손수레에 싣고 온 폐지를 야적장에 내려놓고 있다. 김봄이 기자
폐지를 줍는 서민들이 폐지 값 하락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 동구 한 고물상에서 김모(오른쪽) 할머니가 손수레에 싣고 온 폐지를 야적장에 내려놓고 있다. 김봄이 기자

일당 '5억원' vs '5천원'

사회가 갈수록 양극화하고 있다. 노역장에서 설렁설렁 쓰레기나 치우고 하루 5억원을 탕감받는 전 대기업 총수가 있는가 하면 입에 풀칠하려고 온종일 길에서 폐지를 모아도 5천원밖에 손에 넣지 못하는 서민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잘못됐다"는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하루 벌이에 전념하지만, 최근 폐지 가격까지 하락해 곤궁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폐지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종일 돌아다녀도 만원 한 장을 못 번다"며 "이 때문에 전깃불을 끄고 반찬도 아껴 먹어야 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김모(80'대구 북구 산격동)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10시면 손수레를 끌고 나서 오후 4시가 돼야 집으로 돌아간다. 산격동과 복현동 일대를 돌며 종이와 깡통을 모아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이어간 게 벌써 3년째다. 최근 들어서는 점심도 거른 채 6시간 동안 발품을 판다. 그렇게 해서 손에 쥐는 돈은 고작 5천원 남짓. 김 할어버지는 "3년 전만 해도 하루 만원은 벌었는데 요즘은 고물 값이 너무 떨어져 수입이 반 토막 났다"며 "이 돈으로는 집에 있는 아픈 아내에게 고등어 한 마리 사 줄 수 없다"고 했다.

폐지를 모아 생활하고 있는 이모 할머니도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다. 아흔이 넘은 나이지만 매일 동네 주변을 돌며 폐지를 수집한다. 요즘은 벌이가 반으로 줄어 끼니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에는 하루 1만원, 한 달이면 20만~30만원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요즘엔 한 달에 10만~15만원 밖에 벌지 못한다"며 "기초연금 9만원에 고물을 주워 판돈을 보태면 한 달 살림을 꾸렸는데 이제는 수입이 줄어 살기 힘들다"고 했다. 주민센터에서 파는 쌀을 2만3천원에 주고 사서 밥은 해 먹지만 전기요금이며 가스비 등을 내고 나면 돈이 없어 김치 한 가지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경우가 잦다.

최근 몇 달 사이 폐지 가격은 20% 이상 하락했다. 대구의 고물상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당 130원가량이던 폐지 매입가가 올해 설 이후 100원으로 떨어졌다. 200원 가까이 됐던 3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폐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제지업체다. 최근 2~3년 사이 제지업체들은 고물상으로부터 매입하는 폐지가격을 절반 가까이 낮추는 바람에 고물상들도 난감한 처지다. 한 고물상 주인은 "폐지 3, 4t을 압축해 중간업체에 넘기면 예전에는 하루 3만원 정도 이득을 남겼는데, 요즘은 매입가가 더 비싸 손해를 보기도 한다"며 "손은 많이 가는 반면 돈이 안 돼 폐지 매입을 그만두고 싶지만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들을 생각해 손해를 보면서도 폐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북구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박모(40) 씨는 "폐지 가격이 계속 내려가 지금은 제지업체에서 ㎏당 90원 정도에 가져간다. 노인들의 사정을 잘 아는데다 매일 봐야 하니 손해를 보더라도 100원 이하로는 낮추지 않고 있다"며 "폐지를 한가득 쌓인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오셔도 만원짜리 한 장을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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