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빙하가 빚어낸 그림 같은 호수 마을
할슈타트(Hallstatt)는 고원 빙하가 빚어낸 수십 개의 호수가 알프스와 어우러진 잘츠카머구트 지역 중 백미로 손꼽힌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마을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마을은 할슈태터 호수, 해발 2,995m의 다흐슈타인 산과 함께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곳이다.
이미 오스트리아 관광 사진이나 잡지에 자주 등장해온 할슈타트는 어느새 유럽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동경하는 여행지 중 하나가 됐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호수, 수면에 비친 산봉우리와 산등성이를 따라 오밀조밀 들어선 집이 만드는 평화로운 풍경. 사진을 보든 실제로 찾든 이 작은 동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이곳을 탐내던 중국이 광둥 지방에 할슈타트를 통째로 베낀 마을을 지었을까. 국내에서는 2006년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 알려지며 그 나름 유명세를 탔다.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기차로 4시간 거리에 있다. 할슈타트 역에 내려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야 한다. 선착장을 출발한 배가 맞은편으로 향할 때는 장난감 같던 마을이 점점 실물 크기로 커지면서 기대감도 함께 부풀어 오른다. 특히 오전 일찍 배를 타면 한낮보다 멋진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산봉우리 사이로 쏟아진 햇살이 수면 위에 내려앉아 아침 호수는 금가루를 뿌린 비단길이 된다. 그 눈부신 수면 위로 백조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넋 놓고 보다 보면 어느덧 할슈타트 선착장이다.
배에서 내려 호수 옆길로 들어서면 꽃으로 치장한 집과 골목이 나타난다. 집 안팎을 꾸미는 주민들의 솜씨가 디자이너 못지않게 훌륭하고 섬세하다. 그렇다 보니 아무 곳에나 대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사진이 엽서가 된다. 예쁜데 특이하기까지 하다. 제한된 공간과 가파른 지형에 맞춰 마을이 생겨났기 때문에 집은 높고 좁게 지어졌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골목도 좁다랗다. 어떤 주택은 마치 제비 둥지처럼 높은 절벽에 매달려 있기도 하다. 흔히 볼 수 있는 마을 풍경이 아니어서 더 흥미롭다.
마을 중심에 있는 마르크트 광장 주변엔 안내소와 숙소, 박물관, 우체국 등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자체가 작다 보니 광장도 아담하다. 할슈타트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가스트호프 자우너'로 가면 된다. 할슈태터 호수에서 잡아 올린 송어로 소금구이한 음식이 대표적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격할 일이 또 하나 있다. 할슈타트 소금광산에서 채취한 암염으로 만든 제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천연소금을 마늘, 파프리카, 허브 등을 첨가해 종류별로 판매하고 있다. 소금이 담긴 긴 파란색 병은 실내장식용으로도 쓸 만하다.
좀 더 높은 곳에는 공동묘지에 둘러싸인 15세기 가톨릭 교회가 있다. 말이 공동묘지일 뿐 꽃과 장식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공원처럼 보인다. 할슈타트는 시신을 묘지에 매장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유족들이 다시 발굴해 건조한 후 봉안당에 보관하는 특이한 장묘문화를 가지고 있다. 좁고 경사진 지형 탓에 매장 공간이 부족해 생긴 일이다. 교회 옆 봉안당엔 꽃과 이름을 새겨 넣은 1천200여 개의 두개골이 깔끔하게 줄지어 쌓여 있다. 가장 최근 것은 1983년에 사망한 여성의 것으로 1995년에 추가된 것이다. 지금은 화장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니 이런 고유한 문화도 머지않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땅이 좁은 곳이다 보니 대규모 행사는 호수 위에서 열린다. 코퍼스 크리스티는 예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으로 매년 삼위일체 축일 이후 목요일에 열리는 축제다. 원래는 마을 안에서 열리던 행렬이 약 400년 전 배의 행렬로 모습을 바꾸고 호수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지게 됐다고 한다. 축제 기간엔 한껏 치장한 주민들이 마을 광장을 가득 채우고 할슈태터 호수는 너도밤나무 잎과 꽃으로 단장한 전통 배들로 장식된다.
할슈타트는 '소금 마을'로도 불린다. 할슈타트의 할(hal)은 고대 켈트어로 소금을 뜻하는데 오래전부터 이곳에 소금광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빙하시대 전에 침수된 이 지역이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산골짜기까지 잠기게 되고, 시간이 흘러 바닷물이 모두 빠지거나 증발하자 동굴과 골짜기 깊은 곳까지 소금이 스며든 것이다. 이 소금광산은 역사가 고대 로마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오스트리아에서 사람이 산 가장 오래된 흔적도 여기서 발견돼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곳이다.
과거 귀한 소금산지로 번창했던 마을은 현대에 와서 소금광산을 관광 자원으로 재탄생시켰다. 마을 뒤편에 있는 푸니쿨라를 타고 다흐슈타인 전망대에 오르면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요즘도 채굴이 이루어지며 관광객들이 그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광산 입구에 도착하면 투어를 위해 광부 작업복부터 덧입어야 한다. 견학 중간에 나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게 되는데 작업복 덕분에 신나게 미끄러질 수 있다. 소금을 캘 때 사용하던 장비와 마을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박물관도 볼거리다.
꼭 소금 광산 투어가 아니더라도 전망대는 오를 만한 이유가 있다. 호수 전경뿐만 아니라 저 멀리 알프스 골짜기까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종종 할슈타트와 묶어서 여행하는 호수 건너편 마을 오버트라운도 보인다. 전망대 레스토랑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그중 제일이다. 이 레스토랑에선 할슈태터 호수에서 잡아 올린 생선 요리와 슈니첼 등 육류 요리도 맛볼 수 있다.
할슈타트에서는 어느 시간대, 어느 장소에서든 멋진 풍경과 만날 수 있다. 할슈타트의 가치를 높이는 여러 기록이나 수식어가 아니더라도 이곳은 여행자들의 안식처로 충분해 보인다.
전 '대구문화' 통신원 android201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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