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야! 넌, 감동이야…청송 신기리서 350년 살아

입력 2014-03-25 10:29:19

장수 어르신들과 생사고락…DNA 복제 '2세'탄생 준비

청송군 파천면 신기1리에는 350년 동안 마을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해 온
청송군 파천면 신기1리에는 350년 동안 마을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해 온 '신기리 느티나무'가 있다. 전종훈 기자
여름철 잎이 무성할때 느티나무 모습. 청송군 제공
여름철 잎이 무성할때 느티나무 모습. 청송군 제공

"우리 어릴 때에는 이 나무가 아주 튼실해서 가지 세 군데에 그네를 매고 뛸 정도였습니다.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나무 밑에서 더위를 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 마을의 보물이죠."

청송군 파천면 신기1리 마을은 240여 명이 사는 큰 마을이다. 주민 절반이 65세가 넘고 100세 노인도 사는 장수 마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마을에 최고령은 따로 있다. 마을에서 보물로 불리는 느티나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마을의 한가운데 자리해 350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해 온 느티나무. 이 느티나무 근처에 터를 잡고 평생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황태한(74) 씨가 느티나무를 쳐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예전에는 잎도 무성하고 가지도 컸는데 지금은 예전만 못한 것 같네요. 40년 전쯤 담배농사를 많이 지어서 느티나무 바로 옆에 담배건조장이 있었죠. 그것이 나무에 안 좋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970년대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담배농사를 지었다. 생산된 담뱃잎은 느티나무 옆 담배건조장으로 갔고, 당시 건조장에서는 연탄을 피워 담뱃잎을 말렸다.

이곳에서 나오는 연탄가스가 느티나무 가지 쪽으로 흘러갔고 그렇게 몇 년이 흐르는 새 담배건조장 위로 뻗은 가지는 그 연기를 맡으며 말라 죽었다. 지금은 담배건조장이 사라졌지만 말라 죽은 채 잘려나간 나뭇가지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동네에서 만난 황하명(76) 씨는 느티나무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안 돼 북한군이 이 마을을 찾았다고 한다.

당시 북한군은 비행기 정찰을 피하려고 저 멀리서 엔진 굉음만 들리면 모든 차량을 느티나무 아래로 집합시켰다고 한다. 워낙 느티나무가 웅장하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북한군들은 매일 저녁 주민들을 느티나무 아래로 불러 모아 사상교육을 시켰고, 군가도 부르게 했다. 황 씨는 그때 배운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 매일 밤 모여 노래를 불러야 했지. '장명산 줄기~줄기~', 이런 식으로 부르는 노래였어."

황 씨는 "당시에는 나무에 6명 정도 올라가 화투를 치고 윷놀이까지 했다"며 "나무에 올라가면 평평한 곳이 있어서 마땅히 놀 장소가 없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고 했다.

최근 청송군과 국립산림과학원, 문화재청 등은 신기리 느티나무의 우량 유전자를 보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DNA 추출 및 복제나무를 만들어 자연재해와 기후변화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높이 14m, 둘레 8m에 이르는 신기리 느티나무는 지난 1967년 천연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됐다. 인동 장씨의 시조가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나무의 아래'위 가지에서 동시에 잎이 나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기1리 황만영(60) 이장은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도 지내고, 매달 느티나무 주변 잡초를 뽑고 흙을 돋우는 등 정성을 다한다"며 "마을 사람들이 정겹게 큰 탈 없이 사는 것도 모두 느티나무 덕인 것 같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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