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교육기부 어머니' 김울산 여사

입력 2014-03-25 07:56:10

교육청, 기부문화 확산 위해 재조명…자신 대신 학교 남긴 김울산 여사를 아십니까

교육기부는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지역의 발전을 이끄는 토대가 된다.대구 복명초교 교정 한쪽에 자리한 김울산 여사 흉상. 매일신문 DB
교육기부는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지역의 발전을 이끄는 토대가 된다.대구 복명초교 교정 한쪽에 자리한 김울산 여사 흉상. 매일신문 DB
김울산 여사의 생전 모습.
김울산 여사의 생전 모습.

교육기부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교육기부는 지역 사회가 보유한 인적, 물적 자원과 개인의 재능을 학교와 나누는 운동. 특히 대구에선 교육기부 문화가 조금씩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이 2011년 '지역 사회가 지역 인재를 함께 기르자'는 취지로 교육기부 지원센터를 만드는 등 교육기부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다.

최근 대구시교육청은 교육기부 문화를 확산시키려고 또 한 가지 일을 벌이고 있다. 대구 교육기부 문화의 상징으로 내세울 만한 인물 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평생 모은 재산으로 학교를 세우고 빈민 구호에 나섰던 김울산 여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김 여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한편 대구 교육기부 현황과 추진 계획을 살펴봤다.

◆대구 교육기부의 사표(師表), 김울산 여사

김만덕(1739~1812)은 여성의 몸으로 유통업에 뛰어들어 거대한 부를 일군 제주의 상인. 조선 정조 시대, 육지에서 쌀 500석을 사와 기근에 시달리는 제주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그의 이야기는 TV 드라마로도 다뤄지고, 그의 선행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도 만들어졌다.

대구에도 그에 못지않은 여걸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과 사회봉사에 헌신한 김울산(1858~1944) 여사가 그 주인공이다. 1995년 8월 본지에 그의 일생과 교육기부 활동을 그린 기사가 나는 등 언론에서 다룬 적이 있으나 더 널리 알려지진 못했다. 하지만 그의 행적을 좇다 보면 후세에 본보기가 될 만하고 대구 교육기부 운동의 상징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구시교육청이 각 언론 기사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 여사는 일제강점하 암울했던 시기인 1926년 대구의 명신여학교를 인수했다. 그리고는 광복의 염원을 담아 학교 이름을 '복명'(復明)으로 바꿨다. 그 학교가 지금의 대구 복명초등학교다. 당시 김 여사가 기부한 돈은 쌀 4천 석에 해당하는 8만원. 또 학교 운영비로 매년 3천원을 건네는 등 이 학교에 들인 돈만 약 20만원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돈은 현재 가치로 따질 때 200억~25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김 여사는 또 대구 최초의 초등학교인 희도학교(현재의 종로초등학교)에도 1천원을 기부했다. 흉년이 든 해에는 쌀 2천 석을 내놓고 홍수 피해를 막으려고 사재를 털어 둑을 쌓기도 했다고 한다.

어려움을 딛고 일군 부를 아낌 없이 나눴다는 점에서 그의 선행은 더욱 빛난다. 김 여사는 조선 말기 울산에서 정3품에 해당하는 통정대부 김철보의 장녀로 태어나 16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9살에 남편과 사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예명이 '향이'인 관기가 됐고 술집과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후손이 없었던 탓에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구 조야동에 있는 김 여사의 묘소는 봉분이 훼손돼 폐허나 마찬가지다. 그의 소작인이 설치했다는 비석과 공덕비도 방치돼 허물어져 가고 있다. 제 모습을 갖춘 것이라곤 복명초교 교정 한쪽에 세워진 김 여사의 석상이 전부일 정도다.

김울산 여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대구 교육기부 문화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는 일이다. 이에 따라 대구시교육청은 김 여사의 업적을 기리고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하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시교육청은 다음 달부터 김 여사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학술 세미나를 시작으로 교육기부 공로자 기념사업회를 구성, '김울산 상'을 제정하고 '김울산길'도 지정할 계획이다. 또 김 여사의 묘소 정비하는 한편 그의 전기를 발간해 교육용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최근 김 여사의 묘소를 참배한 우동기 대구시 교육감은 "김울산 여사는 진정 대구 교육기부의 어머니라 할 만하다"며 "김 여사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해 대구가 나눔과 배려로 빛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교육기부로 따뜻해지는 대구

대구의 교육기부는 질과 양 모두 점차 풍성해지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교육기부가 이뤄지고 교육기부 자원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2012년 초'중'고교가 교육청과 지역 사회의 지원으로 교육기부를 받아 활용한 횟수는 모두 11만65건으로 집계됐다. 형태별로 보면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이용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재능기부가 1만3천95건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을 상대로 양부모나 삼촌'이모 되기, 각종 공연 초대 등 사랑을 나누는 정(情)기부 4천381건 ▷봉사기부 8만6천740건 ▷각종 활동 시설 대여 등 자원기부 3천383건 ▷예'체능이나 진로 교육과정 등 프로그램기부가 2천466건이었다.

2013년 교육기부를 받아 활용한 횟수는 11만8천441건으로 전년도보다 8천여 건이나 더 늘었다. 재능기부가 3만3천475건이었고 봉사기부가 6만5천786건, 자원기부가 3천450건이었다. 프로그램 기부는 9천859건, 정기부는 5천871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특히 눈에 띈 교육기부는 시교육청이 주관하고 매일신문사가 후원한 '우리마을 교육공동체 1사(社)-1교(校) 악기기부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성공 사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엘 시스테마는 1975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경제학자이자 오르간 연주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마약과 폭력 등에 노출된 빈민층 아이들에게 악기를 건네고 음악을 가르쳐 감성을 키워줬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LA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등이 배출됐다.

시교육청은 엘 시스테마에다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을 접목했다. 시교육청 이삼선 장학관은 "각 기업을 찾아다니면서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나선다'는 취지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알렸다"며 "음악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감수성이 풍부해질 뿐 아니라 갈고 닦은 연주 실력으로 지역 사회를 위한 각종 공연에 참여하다 보면 나눔의 가치도 알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학교에 악기를 건넨 곳은 ㈜금복주. 명덕초교 등 10개 학교에 5천만원 상당의 모듬북을 기증했다. 지난 한 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곳은 모두 26곳이고, 이들은 8억3천500만원 상당의 악기를 지원했다. 특히 NH대구농협은 50개 학교에 무려 4억원 상당의 악기를 기부해 화제를 뿌렸다.

시교육청은 올해 이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한다. 여기다 교육기부 TF팀을 운영해 교육기부 현황과 만족도를 분석, 교육기부 프로그램의 질을 높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시교육청 창의인성교육과 관계자는 "각 기관, 개인의 교육기부와 학교 교육 프로그램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교육기부 운동에 동참하고 싶은 이는 '대구사랑나눔 교육기부 지원센터'(http://crm.dge.go.kr/edugibu)를 활용하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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