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순의 이야기 콘서트] 하늘을 쳐다본 기억이 아득하다

입력 2014-03-22 07:31:30

"무엇인가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땅속으로 10척쯤 들어갔다. 모양은 돌과 같았고 밖은 검고 안은 희며 큰 것은 주먹만 하거나 바리만 하였으며, 작은 것은 밤만 하거나 감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운석 이야기다. 이런 운석이 며칠 전 진주 땅에 떨어졌다. 당초 하나의 운석이 대기권에서 분리된 것으로 추정돼 아직 더 발견될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큰돈이 된다고 하여 해외서도 운석 수집가들이 찾아왔다니 난리 아닌 난리가 난 셈이다.

그러나 원시인들에게는 이 운석이 어떻게 여겨졌을까? 그것은 너무나 성(聖)스러운 것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는 천상의 신성성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신화나 전설 속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진 돌이 '생명의 알(卵)'로 여겨지기도 했다. 태양처럼 둥글고 커다란 알에서 태어나 나라를 세웠다는 주몽이나 박혁거세나 김알지나 김수로나 모두 그렇게 하늘의 돌에서 태어난 인물들이었다.

운석은 기본적으로 남성적 본질을 가졌다. 부싯돌을 비롯하여 신석기시대의 도구 가운데 '뇌석'(雷石) '벼락의 이빨' '신의 도끼' 같은 것들은 운석에서 나왔다. 운석이 발견된 장소는 벼락을 맞은 곳으로 여겨졌고, 벼락은 천신의 무기이고 천신과 대지신의 결합을 알려주는 징표였다. 운석이 대지를 '쪼갬으로써', 역설적으로 하늘과 대지의 결합을 상징한 것이다.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그리스 델포이 계곡의 델피(delphi)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주의 오봉산에도 여근곡(女根谷)이라 불리는 '쪼개진' 계곡이 있다. 수태(受胎)의 신비가 읽히는 이 대지를 하늘의 신들이 '뇌석'으로 내려쳤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대장장이들이 모루를 후려치는 것은 바로 그 모방에 다름 아니고, 실제로 그들은 신의 조력자인 셈이다. 도기 제조와 농경보다 후대에 나타난 야금술은 이때까지만 해도 하나의 정신적인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저 풍요와 다산의 현상을 눈치 채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신비한 체험의 결과를 우주에 투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性)을 의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상징을 대지모의 이미지에서 찾고자 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동굴을 대지모의 자궁으로 여기면서 인간은 운석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태아인 광석을 광산에서 채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태아는 지하의 암흑 속에서 충분히 '성숙'되어야 하지만, 인간들은 인위적인 조산을 시켰다. 인간이 이렇게 자연의 시간에 개입하게 된 것이 바로 야금술의 발명이다. 야금공은 금속의 성장 과정을 가속화시킴으로써 시간의 리듬을 촉진시켰다. 대장장이와 연금술사의 손에서 금속은 시간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금속을 조작하고 두드리면서 그들은 창조하는 조물주의 영역에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먼과 영웅, 신화 속의 왕들이 이들과 연계되어 있다. 신라왕 석탈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운석을 숭배하기도 하고 신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운석에서 '원형'(原型), 즉 신의 직접적인 발현을 본 것이다. 이슬람 성지 메카의 카바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무슬림들은 이것이 하늘로부터 직접 떨어진 돌이라고 믿는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모여 카바에 박혀 있는 이 검붉은 돌에 손을 대거나 입을 맞추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의 도움으로 카바를 세울 때만 해도 그것은 흰 돌이었지만, 인간의 죄와 접촉되면서 검은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것은 모든 부정(不淨)에서 해방된 돌, 금속이었다. 금속은 더 이상 부패하거나 변질되지 않는 것이었다.

죽은 왕들을 황금이나 덩이 쇠 위에 누인 것은 그 영원의 세계를 기리고자 함일 것이다. 그 영원함에 대한 경외를 잃어버린 것이 오늘날 호모 파베르들의 비극적 위대함이다. 아즈텍의 추장들에게 칼을 어디서 얻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그저 하늘을 가리킬 뿐이다. 운석이야말로 '우주의 DNA'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하늘을 쳐다본 기억이 아득하다.

계명대학교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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